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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로 띄우는 그림편지Ⅳ] <14> 오견규-화순
매화 닮은 삶, 사람 같은 매화
2018년 12월 20일(목) 00:00
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

뼛골 쑤시는 한기를 겪지 않았다면 코끝 찌르는 매화향기 어찌 얻으리.

‘황벽선사·당’



지난 봄, 가까이 지내는 작가에게서 전시회를 잘 마쳤다며 안부 전화가 왔다. 일반적으로 전시기간이 일주일 정도지만 그의 초대전은 한 달 동안이나 진행되었다. 여러모로 혼자 할 일이 많아서 고생했다며 위로를 건넸다. 통속적이지만 멋쩍게 작품이 몇 점 팔렸냐며 빼놓지 않고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그저 천하태평이다. 작품 판매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고 수고라곤 첫날 오픈식 때와 작품 철수하러 간 날, 이틀 뿐이었다며 웃기만 한다. 덧붙여서 이번 전시회에는 숨어 있기로 했다한다.

그래! 그림 그리는 일은 고독과 벗하는 일이다. 숨어서 홀로 고뇌가 쌓여야 작품이 탄생한다. 불현듯 은자(隱者)들의 꽃 매화가 떠오른다. 아마 그도 오랫동안 매화만 그리더니 매화를 닮아가는 것일까? 나의 편견일지 모르지만 세상을 더디게 살아가며 오직 작품에만 매달리는 작가들에게 그런 상상을 해본다.

오래전 이야기다. 스승께서 시골에 거처를 마련하시고 맨 먼저 매화를 심으셨다. “매화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단다(梅一生寒不賣香·조선 중기 ‘신흠’). 그것이 진정한 화가나 선비의 모습 아니겠느냐? 그러니 곁에 두고 친구 삼아 함께 살아야지!” 하시면서 살림집 뜰 앞엔 백매, 화실 문 옆엔 홍매를 심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도 매화 한 분(盆)을 주셨다. “자네는 홍매를 좋아하니 홍매를 골랐다”고 하신다. 나도 선비가 되어보겠다고 당차게 마음먹고 베란다를 치우고 햇볕 잘 드는 곳에 놓고 신주 모시듯 했다. 그런데 어찌할까? 내 사주에 화기(火氣)만 왕성한다더니 몇 달 못 넘기고 말라 죽고 말았다.

고백하건데 예전에도 대나무 한 그루 갖다 놓고 선비 흉내내다가 죽인 적이 있었으니 나무를 죽인 전과 이범이 되는 셈이다. 비록 선비는 매화를 닮아야 한다는 사고(思考)가 동양의 전통적 심미관이라 해도 혼탁한 세태일수록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나는 선비 흉내조차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학창시절 영재 소리를 듣고 출세하더니 헌법도 지킬 줄 모르는 법관도 있고 명품가방을 몰래 받다가 쇠고랑 찬 나리도 보았다. 예로부터 매화가 선비에 자주 비유된 까닭은 찬눈과 혹독한 바람이 쳐도 꽃을 피우는 생태적 특성 때문이다. 선비 또한 세상의 온갖 고난과 어려움을 떨치고 세속에 물들지 않는 고결한 정신을 간직하고 삶에 투영하기 때문이다.

겨울이 깊어지고 섣달도 저물쯤이면 봄을 기다리는 이들은 ‘탐매’니 ‘심매’니 하며 어디쯤 매화가 피었는지 인터넷을 뒤적이며 소식을 찾아본다. 작가들도 덩달아 배낭을 꾸리고 집을 나선다. 평소 사연이 깊은 유명 매화를 찾다보면 먼저 온 이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거린다. 카메라를 연신 만지작거리거나 스케치 삼매경이다.

‘탐매’는 당나라 시인 맹호연(689~740)의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춥고 눈 내리는 겨울날, 봄소식을 기다리며 매화를 찾아 나선 탈속한 선비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로 후세 사람들이 따라했다. 작가들이 매화의 시각적인 아름다움만 전해 주는 일에 불과하다면 그림을 그리거나 사진에 담는 이유와 의미는 매우 하찮은 일이 되고 말 것이다.

매화는 홀로 핀다. 몸은 마르고 수척해도 권세가나 부잣집 마당은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선방(禪房)의 호젓한 적막이나 학덕 높은 이의 명호를 딴 서원의 한켠이 제격이다. 언 땅에 꿋꿋이 서서 꽃망울에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를 들어보자. 세상이 꽁꽁 언 겨울이어도 홀로 청정(淸淨)하다. 단 둘이 마주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다가오는 봄, 고요한 잠행 같은 탐매 길에서 매화를 닮은 사람, 사람답게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

2018년 雨梅齋에서 오견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