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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미술관 송년회’
2018년 12월 19일(수) 00:00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색감의 ‘빛’이 시선을 압도했다. 마치 뭔가에 홀린듯 빛을 따라가다 보니 각양각색의 색을 입힌 종이테이프를 반복해 붙인 캔버스가 나타났다. 남북한의 화해무드에 영감을 받아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을 색과 빛으로 형상화한 우제길 화백의 작품이다. 그러고 보니 전시장 곳곳에는 묵직한 사회적 화두를 특유의 강렬한 빛으로 구현한 작품들이 가득했다. 강추위가 이어진 바깥 세상과 달리 변화무쌍한 컬러들이 빚어낸 화면은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뜨거운 생명력을 보여줬다.

최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화창조원 복합6관에서 개막된 2018 지역작가 초청 ‘우제길의 빛’전에 다녀왔다.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위해 기획된 초대전의 위상을 말해주듯 전시장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시회를 찾은 ‘손님’들은 서로 오랜만의 재회에 반가움을 나누느라 바빴다. 당초 계획에도 없었던, ‘어쩌다 송년모임’에 모두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광주는 문화수도를 지향하지만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송년모임을 갖는 문화애호가들이 많지 않다. 물론 근래 좋은 전시나 콘서트를 단체관람하는 것으로 송년회를 대신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아예 갤러리나 미술관을 빌려 한해를 되돌아 보고 친목을 다지는 예는 드물다.

하지만 문화선진국으로 불리는 미국이나 유럽은 미술관 모임이 일상의 한 부분이다. 연중 관람객들로 붐비는 미국 미술관의 경우 단체모임이 미술관 재정에 큰 보탬이 될 정도로 대중화됐다.

무엇보다 매년 12월이 되면 미국 미술관들은 밀려드는 ‘단체손님’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미술관에서 그림도 보고 식사도 하며 한해를 갈무리하는 송년모임이 쇄도하기 때문이다. 아예 일부 미술관은 ‘컨벤션 마케팅’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미국 메릴랜드주 중심부에 위치한 볼티모어 미술관은 시민들이 가장 선호하는 송년회 장소다. 미술관은 10인 이상 단체모임에 한해서는 큐레이터가 가이드를 맡는 특별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최고급 수준을 자랑하는 미술관의 레스토랑은 1시간 가량 떨어져 있는 워싱턴 D.C의 미식가들이 일부러 찾아올 정도다.

그렇다고 연말에만 반짝 특수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에도 미술관은 가족들의 외식 나들이에서부터 비즈니스맨들의 사교모임에 이르기까지 인기가 높다. 이렇다 보니 송년모임이 많은 12월에는 예약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미술관 송년회가 인기를 끄는 건 미술품을 보면서 지인들과 함께 문화와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색다른 체험’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모임이나 송년회 하면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둘러 앉아 술과 음식이 ‘그날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나라 송년회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한해의 끄트머리인 12월,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송년의 아쉬움을 달래보자. 분명 예술적 감동 못지 않은, 잊고 살았던 일상의 여유를 되찾게 될 것이기에.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