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를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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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를 들다
2018년 12월 18일(화) 00:00
요새 집에서 울음소리가 자주 들린다. 다름 아닌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가. 올해 나에게 첫 조카가 생긴 것이다. 우리 집에 이렇게 갓난아이가 함께하게 된 건 내 생전엔 처음 있는 일이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그렇게 작은지를 그전까진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얼굴은 주먹만 하고 손발은 고사리같이 여리고 작았다. 누나가 장난식으로 ‘삼촌에게 안겨봐’라며 나에게 조카를 떠넘길 때면 혹시라도 부서져 버릴까 무서워 가만히 조카를 안고 굳어버린다.

이렇게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생명의 탄생이 무척 신기했다. 그런데 이 소중한 생명의 성장은 더욱 놀랍고 위대하다. 나는 주말에만 조카를 만나는데 볼 때마다 정말 쑥쑥 크는 게 느껴진다. 처음 3㎏이었던 몸무게도 60일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서 이제는 꽤 무겁게 느껴질 정도다. 누나에게도 이제 아이를 안아주기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누나는 “매일 안아서 그런지 무거워졌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누나의 말을 듣고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옛날 어른들 말에 송아지를 매일 같이 업으면 나중에는 황소도 업는다더라.”

황소는 무게가 500㎏까지 달하는 거구의 동물이다. 이런 황소를 사람이 업는다고 상상하면 어떤 사람이 시도하더라도 힘들 것 같다. 장미란 선수의 역도 용상 기록이 186㎏이라고 하니 보통 사람이 0.5t의 황소를 드는 건 역시 터무니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범한 성인 남성이라면 갓 태어난 송아지 정도는 업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송아지를 하루도 빠짐 없이 매일 같이 들어 올리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황소도 들어 올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수적천석(水滴穿石). 작은 물방울이라도 수천 수만 번 떨어지면 결국 바위에 구멍을 뚫는다. 지금 당장은 미미해 보이는 일이라도 꾸준하게 반복하면 미래에는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이다. 물방울이 바위에 떨어지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바위를 뚫는 건 신기한 일이다. 송아지를 업는 것은 별것 아닌 일이지만 황소를 업는 건 무척이나 대단한 일이다.

이렇듯 사소한 일이라도 끈기 있게 꾸준히 하다 보면 미래엔 위대한 일을 해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요즘 사람들은 황소를 들 수 있는 미래를 지향하며 살기보다는 현재지향적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대다수다. 불확실한 먼 미래에 투자하기보다는 현재의 만족을 쫓고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일찌감치 포기해버린다. 찰나의 행복과 편안함을 더 중요시하고 미래를 위한 작은 노력들은 가볍게 여기는 풍토. 점점 끈기 없어지는 사람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 대신 티끌 모아 티끌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사람들은 막연하게 미래에 부자가 되길 바란다. 믿음을 동반한 구체적인 기대가 아닌 정말 막연한 기대로. 복권에 당첨되는 것처럼 한 번에 큰돈이 뚝 하고 떨어지길 바란다. 일반적으로 많은 돈을 모으려면 작은 돈부터 차근차근 저금하는 것이 순서다. 그렇지만 요즘 사람들의 실정은 부자가 되길 바라면서도 작은 돈은 푼돈이라며 ‘탕진잼’,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잠깐의 만족을 위해 아끼지 않고 소비한다. 욜로는 인생은 한 번뿐이니 현재를 즐기라는 멋진 말이다. 하지만 요새 무작정 욜로만 외쳐대며 태산 같은 미래를 위한 티끌 같은 노력들은 무시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오죽하면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말까지 나오게 됐겠는가.

미래에 큰돈을 갖고 싶다면 작은 돈부터 저금하고 멋진 몸매를 갖고 싶다면 쉬는 시간마다 맨몸 운동을 하고 뛰어난 영어 실력을 갖고 싶다면 매일 영어단어 5개씩이라도 외워보자. 지금 당장은 사소해보여도 꾸준하게 반복하면 미래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너무 요행과 요령에만 기대지 말고 꾸준함과 끈기의 힘을 믿어보자. 목적지까지 가는 지름길은 아닐지 몰라도 길을 잃지 않고 정확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공이 산을 옮기듯, 결국 미래에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운이 좋거나 꾀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직함과 끈기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에게 황소를 업으라고 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처음부터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당장 내가 황소를 업을 수 있는지 고민하다가 포기하는 근시안적인 시각이 아닌, 송아지 때부터 매일 꾸준히 업다 보면 언젠가 황소도 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미래지향적인 시각을 갖고 싶다. 남들은 같잖고 어리석게 보더라도 나 스스로는 꾸준함의 미덕을 믿고 언젠가 찾아올 기적 같은 미래를 향해 우직하게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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