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영정 수백년 지킨 소나무 죽게 놔둘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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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영정 수백년 지킨 소나무 죽게 놔둘건가
폭우에 뿌리뽑힌 채 고사 위기...담양군 제거 결정에 주민 분노
경사로의 위태로운 천년송도 받침목조차 설치 않고 방치
2018년 09월 07일(금) 00:00
6일 담양군 남면 지곡리에 있는 식영정(명승 제57호)을 200여년간 지켜온 적송이 지난달 27일 폭우로 쓰러져 뿌리가 노출된 채 방치돼있다. /담양=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조선시대 천재시인 송강 정철이 ‘성산별곡’을 지은 곳으로 유명한 명승 제57호 식영정(息影亭·담양군 남면 지곡리) 곁을 수백년 동안 지켜온 적송(赤松)이 문화재청의 무관심과 담양군의 관리소홀 등으로 고사하고 있다. 최근 하루 동안 130㎜에 달하는 폭우가 쏟아져 수령 2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적송이 쓰러져 뿌리를 드러낸 채 죽어가고 있음에도 사실상 방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6일 담양군 등에 따르면 식영정에는 수령 100년 이상 된 소나무 50여 그루 등 모두 600여 그루의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가운데 적송 한 그루가 지난달 27일 쓰러졌다. 이 나무는 식영정(면적 2만2000㎡) 바로 옆에 서 있었으며, 높이 10m, 무게 26t에 달하는 거목이다.

이 소나무는 지난달 28일 오전 식영정을 주변을 순찰하던 직원에 의해 발견됐다. 소나무가 쓰러진 장소는 경사만 45도에 달하며, 도로에서 50m 가까이 떨어진 곳이다.

담양군은 이를 문화재청에 알렸지만, 문화재청은 식영정의 수목은 군이 판단해 결정하라고 답변했다. 식영정은 문화재청 관리대상이지만, 주변 수목 등은 자치단체가 관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담양군은 이후 적송을 살린다며 5000원짜리 수액 2병을 맞힌 게 전부다. 광주일보 취재진이 현장을 확인한 결과 흙밖으로 드러난 뿌리는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강한 햇빛에 그대로 노출돼 말라가고 있었다. 한 주민은 “마치 적송이 빨리 죽기를 바라는 것 같다”고 쓴소리를 했다.

담양군은 소나무 회생 조치를 바라는 주민들의 여망과 달리 지난 5일 전문가 등의 자문을 받아 적송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군이 내세운 적송 제거 명분은 지난달 31일 나온 자문의견서다. 이에 따르면 식영정의 경사가 심해 작업 과정의 안전을 담보하기 힘들고, 식영정의 건물과 인접한 석축과 지반이 가라 앉을 가능성이 높은데다 나무를 세운다해도 생존할 가능성이 0.1%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작업을 해야할 포크레인의 현장 진입이 어려운 점과 진입로를 만들기 위해서는 식영정 주변의 소나무를 최소 10그루 이상 제거해야 하는 점도 감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담양군이 소나무를 살리는 다양한 방안이 있음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50년 넘게 조경업을 해왔다는 한 전문가는 “흙 밖으로 드러난 뿌리 부분에서 수분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보온재로 덮고 나무 진액이 빠지기 전에 응급조치를 해야 한다”면서 “이대로 방치하면 곧 고사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담양 주민들은 “이번에 쓰러진 적송이 워낙 좋은 나무이다보니 고사 후 나무를 노리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면서 “일각에선 적송으로 바둑판을 만들 것이라는 말이 전해지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얘기들이 나돌고 있다”고 개탄했다.

이 곳에서 수령이 가장 오래된 소나무로 알려진 ‘천년송’도 석축(石築·돌로 쌓은 옹벽) 옆 경사로에서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담양군은 미관 등을 이유로 천년송에 그 흔한 받침목조차도 설치해 주지 않고 있다.

담양군 관계자는 “올해 4000여만원을 들인 수목보호 사업을 통해 병해충 제거를 위해 방역을 진행하는 등 나무 관리에 힘써왔다”면서 “쓰러진 나무는 호우로 인한 토사 유실 등에 따른 지반 침하로 발생한 자연재해다. 천년송의 경우 너무 커 받침목과 나무를 지탱해줄 끈 등을 설치하기가 어렵고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날 광주일보가 취재에 나서자 담양군은 적송 제거 결정을 번복했다. 쓰러진 나무가 버틸수 있는 기간을 최대 내년 1월까지로 보고 이 기간 동안 나무 살리기에 집중하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김한영 기자 you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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