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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무 피아골피정집 관장 신부] 공짜 없는 세상, 모든 것이 공짜인 세상
2018년 08월 03일(금) 00:00
“선생님께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짜는 정말 많다/ 공기 마시는 것 공짜/ 말하는 것 공짜/ 꽃향기 맡는 것 공짜/ 하늘 보는 것 공짜/ 나이드는 것 공짜/ 바람소리 듣는 것 공짜/ 미소 짓는 것 공짜/ 꿈도 공짜/ 개미 보는 것 공짜”

박호현의 ‘공짜’라는 시(詩)입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라네요. 지난달 인터넷 상에 올라와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놀라움을 주었다는군요. 선생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어린이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눈이 따로 있고, 그런 창의적인 생각에다가 계산하지 않는 순수한 마음까지 더해져서 우리 어른들이 보지 못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해줍니다. 어린이들의 맑음이 혼탁한 어른들에게 깨달음을 주는 경우가 때때로 있기는 하지만……. 요즘같이 재난 수준의 폭염에 시달리고, 기무사의 계엄령 검토 문건이나 양승태 대법원 시절의 ‘사법 농단’ 문건처럼 평정심으로 듣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화나요’ 뉴스들을 접하는 이때, 저 ‘공짜’라는 시가 더욱 돋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여러 세상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공짜가 없는 어느 선생님의 세상도 있고, 모든 것이 공짜인 어느 초등생의 세상도 있을 터, 같은 하늘 아래의 세상이지만 바라보는 사람의 처지에 따라 달리 보이는 세상들이 존재합니다. 똑같은 달력의 날짜를 바라보지만 자신이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어느 처지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그 날짜의 숫자의 색깔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이미 많은 분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청산되고 있지 않은 예를 들면 이럴 것 같습니다. 돈맛과 권력 맛에 취해 삼권분립이 원칙인 민주공화국의 뿌리를 흔들면서까지 국정(國政)을 기업 경영처럼 삼았던 이명박 정권 때나 왕정-군주 정체(政體)로 착각했던 박근혜 정권 때에 그 밑에서 온갖 사익(私益)을 챙겼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수십 년 동안 국가와 동족의 무관심 속에 버려져 있다가 평화의 소녀상으로 부활하여 생의 마지막을 ‘평화 나비’로 날아가신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 할머니들의 세상, 또 부당 해고로 인해 십 수 년 동안 복직 투쟁의 고통 속에서도 ‘함께’의 가치를 공유한 KTX 승무원들의 세상과는 분명 다른 세상입니다.

앞의 세상에서는 공짜가 없어서 매번 양심과 법과 상식을 그 대가로 지불하며 사람이면서도 사람답게 살고 있지 않은 세상이지만, 뒤의 세상들에서는 자연이 주는 모든 것에 대한 고마움이 배어 있고, 함께 그 고마움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 심지어 나이 먹는 것이나 대화와 미소와 꿈까지 공감하는 것조차도 공짜 선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입니다.

어린이들이 때로는 어른들의 스승입니다. 저는 산 속에 살면서 특히 이 계절에 더욱 자주 보게 되는 수많은 곤충들이 공짜인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개미나 거미, 나방 같은 곤충들을 없애려고 만 했지 공짜로 바라보며 생명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짜’라는 이 시가 저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줍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역설적인 말씀을 떠오르게 합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인 당시 율법 학자들에게는 이해가 어려워 감추어져 있지만 오히려 ‘철부지들’로 표현되는 당시 제자들 곧 교육을 받지 못하고 지혜를 갖추지 못한 그들에게는 더 쉽게 이해되어 잘 드러나게 된다는 가르침!(루카 10, 21 참조)

모든 것이 공짜인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 ‘공짜’라는 멋진 시(詩)를 쓴 이 어린이가 먼 후일에 어른이 되었을 때, “옛날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었구나”라고 느끼지 않게 되는 그런 세상, 자연과 이웃이 나에게 주어진 공짜 선물로서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는 그런 세상에서 살기를 희망해 봅니다. 심지어 ‘개미’까지 생명과 살아 있음으로 바라보면서 내 주위의 모든 것이 공짜 선물임을 감사하게 느끼면서 이 혹독한 공짜 없는 세상을 이겨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