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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사회적 대타협 필요하다
2018년 06월 06일(수) 00:00
[심명섭 행정학박사·대한문학작가회 회장]
대중 매체에서 방영되는 프로그램을 보면 그 시대가 원하는 관심사나 흐름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음식과 관련된 맛집, 자연과 관련된 여행, 사회적 관심사를 다루는 토크 콘서트 프로그램 등 힐링(healing) 프로그램이 주를 이룬다. 과거에는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삼시세끼 풍족하게 먹으면서도 왜 힐링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 사회가 점점 외적인 물질의 풍족 보다는 내적인 풍족을 추구하는 단계로 넘어 갔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은퇴한 기성세대들은 일생의 대부분을 가족 부양과 국가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노후 힐링에 투자하는 시간은 앞선 시간에 비해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지금 심적인 만족을 얻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사회의 기둥이 될 청소년들은 어떨까? 아마 그들은 지금 본인 미래의 청사진을 그릴 때부터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기 위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삶의 질을 생각하는 연령이 낮아졌다.

그러면 사회 진출의 입구에 서있는 요즘 대학생들은 무슨 노력을 하고 있을까? 현재 대학가에 가서 값어치 있는 삶의 질을 위해 가져야 할 직업을 고려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안정성’ 혹은 ‘여가 시간의 보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보장하는 직업으로 공무원 혹은 공기업 등을 언급한다. 청년 취업이 가장 큰 문제인데 선발하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너도나도 올인 하고 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마땅히 들어갈 직장도 없다. 앞서 언급했던 점들에 대한 기대가 커서 웬만한 직장은 가서 오래 못 버티고, 점점 청년 실업률은 높아져만 간다. 그래서 이런 부분을 누군가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힐링을 중요시하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요구가 급속도로 늘어나는가. 모든 시스템이 서열화 되어 개인주의적인 면이 높아지고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그 삭막하고 정 없는 공간 속에서 여유를 잃어가기 때문이다. 더하여 점차 그들만의 갈등이 쌓이고 쌓여 하나 둘씩 곳곳에서 터졌다. 이것이 사회 문제로 발현한 것이다. 이를 반증하듯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사회 문제와 사회 통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이 한국 사회의 각종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분석했다. 이 갈등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노동자와 경영자의 갈등, 부자와 빈자의 갈등,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 고령자와 젊은이의 갈등 등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갈등의 예를 보면 자동차를 생산하는 현장 근로자의 경우 똑같은 자동차를 생산하는 일을 하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연 2천만~3천만 원을 받고, 정규직은 비정규직의 2~3배를 받는다. 그리고 비정규직은 급여가 낮고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어 가는데 무슨 근로 의욕이 생겨나겠냐는 것이다.

직종 간 차이를 타파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일단 처음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직종이 나뉜다. 여기서 각 직종간에 급여 차이가 크게 나고, 이러한 점으로 사람들을 서열화시켜 평가해 버린다. 차갑고 냉정하다. 앞서 말한 모습을 보면 왜 대부분의 청년들이 공직 사회에 진출하려고 하는지 이해는 간다.

우리나라가 급속히 민주화가 되면서 촘촘하게 손을 못 본 분야가 바로 노동 분야다. 갑자기 민주화가 되다 보니 사방팔방에서 요구 사항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목소리 큰 분야부터 해결했는데 노동 분야는 미처 손보지 못했다. 그때 버스는 이미 출발해 버렸다. 떠나버린 버스를 쫓아가서 지금 승차하려고 하니 기득권의 반발이 심하다. 기득권이 있는데 그 기득권을 손보려 하면 그 기득권이 가만히 있으려고 하는가? 그래서 누군가가 총대를 메고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가 불안하다. 어떤 전공자가 나와서 하든 어떤 유능한 지도자가 나와서 하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우리 모두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