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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22〉 광주 검은 책방 흰 책방
“문화 있는 동네책방, 이만한 놀이터가 없죠”
2018년 04월 30일(월) 00:00
매월 수십 여권의 책을 읽는 이은경 대표는 단골회원들의 독서 취향을 파악해 추천도서 리스트를 제안한다.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4시, 조선대 정문 앞의 한 동네서점이 밀려드는 인파로 들썩거렸다. 유명 소설가 김영하씨가 예고도 없이 깜짝 방문한 것이다. 그의 ‘서프라이즈’는 SNS를 타고 급속히 퍼지면서 순식간에 80여 명의 팬이 서점을 찾았다. 전날 김 작가가 광주에 온다는 소식을 접한 일부 독자는 몇 시간 전부터 책방에 몰려와 기다리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김 작가가 서점에 등장하게 된 건 도서출판 민음사의 ‘어쩌다 가게 된 동네에 동네책방이 있다면’의 게릴라 이벤트 덕분이다. 이날 그는 30여 분 동안 서점에 머물면서 독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사인회도 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김 작가가 방문한 동네서점은 ‘검은 책방 흰 책방’(대표 이은경). 동네서점 살리기의 일환으로 열린 이벤트 덕분에 ‘검은 책방 흰 책방’은 짧은 시간에 이름을 알리는 홍보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개점 이후 가장 많은 방문객이 찾았다고 한다.

이처럼 근래 광주에서도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를 내건 동네서점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올 초 광주시가 펴낸 ‘싸목싸목 책방 마실’ 리플릿을 보면 우리 동네를 지키고 있는 작은 책방은 12곳(2017년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검은 책방 흰 책방’은 올해로 개점 2년째를 맞은 문학전문서점이다.

지난 2016년 7월16일 조선대 정문 앞 낡은 건물 2층에 둥지를 튼 이곳은 책을 좋아하는 소설가 김종호(49)씨와 아마추어 시인 이은경(48)씨 부부의 보금자리다. 독특한 이름의 검은 책은 소설을, 흰 책은 시집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설과 시집을 주로 취급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작년 말부터 철학, 인문학, 에세이, 예술 등 다양한 장르의 책을 판매하고 있다.

책방에 들어서면 유쾌한 목소리의 주인공 이은경씨가 반갑게 방문객을 맞는다. 20평 규모의 책방 한가운데에는 나무 테이블과 화이트 톤의 깔끔한 책꽂이가 자리하고 있다. 서가 맨 위에는 ‘검은 책방 흰 책방’이라고 적힌 초록색 나무 간판과 목공품들이 놓여 있고 책꽂이 곳곳에는 손 글씨로 쓴 추천 도서 리스트가 부착돼 있다. 대형서점에선 접하기 힘든 동네책방의 소박한 감성이 느껴진다.

이들 부부에게 서점은 오랫동안 꿈꿔왔던 로망이자 놀이터다. 특히 책방은 남편 김씨의 ‘희망사항’이었다. 평소 시와 목공예를 좋아했던 그녀는 남편과 상의해 공방 겸 서재를 갖기로 한 후 대학교 앞에 책방을 차렸다. 직장생활을 하는 남편 대신에 서점의 운영은 아내 몫이다. 김씨가 서점의 소설책을 담당한다면 이씨는 시집과 다른 도서들을 전담한다. 이들 부부가 추천하는 책을 믿고 구입하는 고객들이 늘어나면서 단골회원만 160여 명에 이른다.

문학전문서점답게 ‘검은 책방 흰 책방’을 자주 찾는 회원들은 문예창작학과 학생에서부터 성악가, 의사, 평론가, 주부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벤야민 읽기 모임’ ‘라깡 읽기 모임’ ‘한국소설읽기 모임’ 등 소모임 활동을 통해 독서의 즐거움을 누린다.

뭐니뭐니해도 ‘검은 책방 흰 책방’의 매력은 단순한 서점이 아니라 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이들 부부는 매월 정기적으로 소설가, 시인, 평론가들을 초청해 낭독회와 강연회를 개최한다. 소설가 정지돈, 시인 황인찬·백은선 등의 문인들이 이곳에서 낭독회를 열었다. 특히 황인찬 시인의 시 낭독회는 3일 만에 선착순 30명의 티켓이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책방에서 놀이의 정점은 낭독회가 아닐까 싶어요. 모든 것이 수도권 중심으로 돌아가는 탓에 광주에서 낭독회를 갖기가 쉽지 않지만 지난해 여섯 번의 낭독회를 통해 독자와 작가가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어요. 낭독회에 모인 젊은 친구들이 시인이 직접 읽어주는 시를 따라 읽으면서 집중하는 모습은 너무나 보기 좋아요. 개인적으로 이만한 놀이가 없다고 생각해요.”(김종호)

그럼에도,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건 녹록지 않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격할인 혜택이 있는 온라인 서점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책방에서 수익을 내기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에선 책을 고르는 안목과 취향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이 대표의 조언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할 때는 자신이 원하는 책 이외는 다른 책들을 살펴볼 기회가 많지 않아요. 반면 동네서점에서는 자신이 구입하려는 책 이외에 서가에 꽂힌 관련 분야의 책들을 살펴 볼 수 있기 때문에 책을 ‘보는 눈’을 키울 수 있죠. 여기에 책방지기의 북큐레이션이 보태진다면 알찬 독서 이력을 쌓을 수 있어요.”

이 대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2018년 책의 해’를 맞아 남다른 계획을 꿈꾸고 있다. 현재의 독서 소모임을 좀 더 업그레이드시킨 ‘작은 인생학교’다. 한국출판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단편적인 독서 소모임과 달리 테마가 있는 전문가 강연과 낭독, 독서, 글쓰기, 음악회 등 다채로운 내용으로 운영된다. 6개월간의 과정을 마무리하는 수료식에서는 참가자들이 직접 쓴 시와 에세이 등을 발표하는 특별한 시간도 마련된다.

이 대표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서점으로는 독자들을 불러 모으는 데 한계가 있다”면서 “동네서점이 지역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지자체와 관련기관의 지속적인 관심이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현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최현배기자 choi@kwangju.co.kr





※ 이 기획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