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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주의 '건축학개론'
2018년 04월 04일(수) 00:00
“한 도시의 건축과 음식이야말로 여행의 진짜 동기이다.”

지난 2017년 국내에서 발간된 제임스 설터의 산문집 ‘그때 그곳에서’의 한 구절이다. 작가는 모름지기 여행이란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 보게 하는 거울이라며 세계 각국의 도시와 건축물에 대해 소개했다.

필자가 이 문장에 꽂힌 건 작가와 비슷한 여행관을 갖고 있어서다. 소문난 관광지나 명소를 찾아 인증샷을 찍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론 그 도시의 미술관, 서점, 도서관, 시장을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다.

사실 미술관과 갤러리, 도서관은 문화관광의 핫플레이스다. 특히 미술관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미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지표라는 점에서 색다른 여행을 꿈꾸는 관광객에겐 반드시 둘러봐야 할 필수코스가 됐다. 근래 문화애호가들을 중심으로 국내외 미술관과 도서관, 서점을 답사하는 문화기행이 인기를 끄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난해 11월 필자가 둘러본 부산의 ‘이우환 공간’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랜드마크로서 손색이 없었다. 지난 2015년 개관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이우환 공간(연면적 1400㎡)은 검정색 유리로 전면을 마감한 심플한 외관이 인상적이다. 말 그대로 건물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설계 당시 이 화백은 건축가와 함께 전시장 기본설계에서부터 전시물배치, 주변 경관과의 조화, 조명의 각도까지 세심하게 챙겼다고 한다. 하얀 벽으로 채워진 건물 내부는 마치 미로처럼 되어 있어 세계적 거장의 예술세계와 공간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한다.

이우환 공간은 개관과 동시에 국내외 미술계 인사에서부터 유치원 어린이까지 하루 평균 수백 여명이 다녀가는 명소로 떠올랐다. 또한 전국 각 대학 건축학과 학생들의 투어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부산시립미술관은 이우환 공간의 작품을 잘 보존하기 위해 단체예약 대신 5∼10명 단위로 관람을 허용하는 등 지역의 문화브랜드로 키우고 있다.

그렇다면, 광주는 어떨까. 유감스럽게 문화수도를 표방하고 있지만 도시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매력적인 공공 건축물이 드물다.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건립하기 위해선 심의단계에서부터 디자인, 주변과의 조화 등을 고려해야 하지만 별다른 기준 없이 일반 건물과 마찬가지로 건축법 시행령, 국토교통부 건축위원회 심의기준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적 감각이 요구되는 미술관, 도서관, 공연장의 건축물 심의과정에서도 도시의 이미지는 중요한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 때문에 근래 신축을 앞둔 융복합 센터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플랫폼’(AMT)이나 서구 복합커뮤니티센터, 시립도서관 역시 자칫 색깔 없는 공공건축물이 되고 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아름다운 건축물은 도시의 랜드마크이자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소중한 자원이다. 게다가 건물은 한번 짓고 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장기적인 안목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젠 건축심의 단계에서 디자인, 조경 등을 꼼꼼히 따지는 광주만의 특색있는 ‘건축학개론’이 필요하다.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