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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규 원불교 사무국장]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의 의미
2018년 03월 30일(금) 00:00
지난 해 11월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6마리의 개들이 등장해 화제가 되었다. 이 개들은 다름아닌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오수개들이었다. 술에 취해 풀밭에 잠이 들어있던 주인을 자기 몸에 개울물을 적셔 불을 끄다 지쳐 죽었고, 잠에 깬 주인은 눈물을 흘리며 개를 땅에 묻어주고 지팡이를 꽂아 주었다. 그런데 그 지팡이에서 싹이 나오고 큰 나무가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오수라 부르고 그 때부터 마을이름도 오수라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필자도 몇 년전 오수교당에서 근무를 할 때에 제일 먼저 가본 곳이 오수 원동산공원에 있는 의견비(義犬碑)였다. 황금개의 해인 올해에 오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이렇듯 우리 민족은 견공들과 삶의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왔다. 요즘 주변에 애견 미용실, 애견 보험에 이어 애견 묘지까지 등장했다. 며칠 전에 만난 한 분은 자신은 라면을 먹어도 반려견은 유기농을 먹인다고 할 정도로 반려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그런데 며칠 전 우리 사회에 또 다른 ‘개의 논란’으로 시끄럽다. 울산시장의 경찰수사에 대해 자유한국당 장제원의원은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에 걸렸다.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이에 격분한 경찰관들이 “돼지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이 세상이 부처로 보인다(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라는 피켓을 들었다.

이성계의 익살스런 놀림에 당대의 고승이었던 무학대사가 선문답으로 일갈한 이 말의 본의는 서로간에 공경의 마음으로 사는 삶이 바로 부처님이 바라는 세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 대하는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윗사람 역시 아랫사람을 대할 때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도 포함이 된다. 이를 기독교에서는 사랑이라 하고, 불교에서는 자비, 원불교에서는 감사라 한다. 이렇듯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이라는 단어는 모든 종교의 핵심을 관통하는 핵심 문구다.

이 단어를 뉴스에서 보니 반갑기도 하였지만, 그 내용을 보면 씁쓸하다. 용산 참사, 밀양 송전탑, 제주 강정마을, 성주 소성리의 현장에 있었던 필자로서는 이번 자유한국당의 발언이 마음 한켠에 묘하게 다가온다. 공권력이라는 힘 앞에 무기력하게 생존권을 박탈당해야 했던 많은 약자들은 지금까지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지난해 4월 26일, 성주에 사드를 기습적으로 배치하던 그 새벽이 생각난다. 소성리 좁은 도로를 속도도 줄이지 않고 질주하는 사드 배치 차량을 보호하기 위해 주민들을 방패로 밀어붙이는 경찰들을 보며, 오히려 주민들이 이렇게 말을 한다. ‘밀지 맙시다. 밀다가 경찰들 차량에 부딪쳐요’라는 말에 억울함과 함께 섞인 감동의 눈물이 쏟아졌다. 그 억울하고도 분통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우리가 원망해야 할 대상은 경찰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울산시장의 수사 하나를 놓고 이리도 분개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당치가 않다. 그동안 경찰에 대한 반감과 사회적 모순을 일으킨 장본인들이 바로 그들 아닌가. 장제원 의원의 말은 그동안 음식점에서 무료로 식사 제공을 받았던 식당에서 돈을 내고 밥을 사먹으라 요구하는 식당에 깽판을 치는 저잣거리 건달의 모습이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무학대사가 건넨 불안견유불(佛眼見惟佛)이라는 선문답이자 직언이었던 이 말은 이성계 자신이 먼저 참된 지도자로서의 인격을 갖추어야 백성이 이를 본받아 조선의 큰 기반을 다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자신을 공경하고, 가족을 공경하고, 이웃을 공경하면 천하에 평화가 깃든다. 이것이 중용에서 말하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이다.

이제 곧 4월이다. 4월이면 장흥 한재공원에서는 할미꽃이 군락으로 꽃을 피워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3-4년 전 산불이 났는데 신기하게도 고사리가 나야 할 자리에 할미꽃이 먼저 피워 군락지를 이뤘다. 할미꽃의 꽃말은 ‘공경’이다. 지금 이 시대에 한재공원처럼 핀 할미꽃처럼 사회의 지도자와 국민 모두가 공경의 마음이 확산되어 천하가 태평하고 평화로운 낙원 세상이 펼쳐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