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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리틀 포레스트’는?
2018년 03월 21일(수) 00:00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Y씨(75)는 일주일에 한번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박물관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문화해설을 하기 위해서다. 36년간의 교직생활을 마친 후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시작한 ‘황혼의 외출’이었다.

Y씨는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부터 예정된 박물관 투어를 진행하려면 늦어도 새벽 5시에는 집을 나와 서울행 기차를 타야 했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그는 정작 마음이 더 바빴다. 관광객들에게 충실한 설명을 하려면 박물관의 역사와 소장품 자료들을 꼼꼼히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 ‘공부’를 하지만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은 탓에 연도나 이름이 자주 헷갈렸다. 그러니 기차 안에서 잠시라도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Y씨가 ‘사서 고생한’ 이유는 ‘즐거움’ 때문이다. 비록 몸은 힘들고 피곤하지만 좋아하는 미술품과 유물을 관광객들과 함께 관람하는 일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미술품들이 아닌가.

하지만 수년 전부터 기력이 쇠약해지자 그는 ‘서울행’ 대신 국립 광주박물관으로 행선지를 옮겼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문화해설사라는 직함은 그대로다. 매주 목요일 박물관으로 ‘출근해’ 방문객들에게 소장품과 전시회를 설명하며 ‘화려한 노후’를 즐기고 있다. 얼마 전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지인들과 함께 미술관 모임을 만들어 국내외 미술관을 답사하기도 한다.

30대 맞벌이 주부인 후배 K는 요즘 쿠키 만들기에 푹 빠져 있다. 평소 바쁘다는 이유로 패스트푸드를 자주 구입했는데 친구로부터 ‘홈메이드 쿠키’를 선물 받은 후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마침 광주YWCA여성인력개발센터에서 쿠키 만들기 강좌를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자 마자 수강등록을 마친 그녀는 얼마 전부터 아이들에게 수제과자와 케이크로 간식을 챙기고 있다. 레시피에 맞춰 반죽을 하고 오븐에 굽기까지 조금은 더딘 과정이지만 그녀는 예상치 못한 행복을 얻었다. 아이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과자를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쿠키를 맛있게 먹는 아이들의 환한 표정을 보면 일주일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지는 것 같단다.

후배의 ‘자랑’을 듣는 순간, 얼마 전 관람했던 영화 ‘리틀 포레스트’(little forest)가 스쳐 지나갔다. 일본작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도시의 고단한 삶에 지쳐 황폐해진 젊은 여주인공이 고향으로 돌아와 채소와 과일을 직접 재배하고 동네 친구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마음의 치유를 하게 된다는 줄거리다. 드라마틱한 스토리는 없지만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자연 풍광과 소박한 밥상은 잔잔한 여운을 남겼다. 마치 행복은 거창하지 않은, 아주 소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듯 했다.

바야흐로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시대다. 올해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일상의 작은 행복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보자. 때론 따뜻한 커피 한잔이, 사무실 책상 위 예쁜 화분이 당신의 ‘리틀 포레스트’일지 모르니.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