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화순 용암사 주지스님] 잘돼야 할 텐데…
목요일, 저녁 7시 17분. 마당은 승용차로 가득차 있었다. 어림잡아 30여 대 정도. 마당 입구엔 교통정리봉을 든 봉사자인 듯한 사람도 서있었다. 아줌마 서너 명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스틸식 단층 조립 건물로 된 교회를 지나다 본 풍경이다. 들판에 횅하게 있는 교회다. 용암사는 1년에 서너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다. 부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우리도 저녁에 행사를 하면 저렇게 사람들이 많이 올까?, 요즘 세상에 시골 산속까지 누가 찾아오겠어? 그것도 깜깜한 밤중에…’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속으로 이야기 하다가 내가 뭐하나 싶어서 쓴웃음이 나온다. 장사가 안돼서 파리만 날리는 가게 주인이 다른 가게에 손님 많은 걸 보는 기분이다.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얼마 전, 열흘이 넘어서야 겨우 주문한 물건을 받았다. 내가 읍내까지 나가서 택배차 지나는 길가에 기다리고 있다가 받아 왔다. 택배 회사 잘못 걸리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시골의 현실이다. 쇠락하고 있는 시골에 기생해서, 갈수록 외면당하고 있는 종교에 몸담고 있는 것이 지금 나의 현주소이다. 이런 현실을 망각한 채, ‘이런 벌판에 횅하게 서있는 교회는 뭘 먹고 살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던 자신의 순진함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최근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졌다고 언론에서 제법 크게 기사화 된 적 있다. “여자 아이스하키팀 단일화는 북한의 갑질이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상태에서 성급하게 북한에 다가가려 하고 있다.”, “무리한 남북단일팀 추진이 반대할 핑계가 없는 보수층에게 먹이감을 제공했다.”는 등 여러 분석이 나왔다. 지지율이 50%대로 떨어진 것이 중요한 뉴스거리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싱겁게도 불과 며칠 뒤엔 다시 60%대를 회복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불과 며칠 사이 나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다.
정부의 지지율은 TV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시청률이다. 광고로 먹고 사는 민영 방송사는 시청률이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시청률이 나쁘면 프로그램이 폐지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시청률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오래된 속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시청률을 끌어 올리려면, 쓰디 쓴 약처럼 좋긴 하지만 사람들이 꺼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선 안된다. 시청률 지상주의는 시청자에겐 약이 아니라 독이다. 시청률 경쟁이 방송을 망치고 결국 시청자인 사회구성원들을 어리석게 만들듯, 정치인이 개인의 지지율에 연연해하면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기업의 영업 실적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면 기업 윤리나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소비자인 사회 구성원에게 오롯하게 돌아간다. 지지율에 연연하고, 시청률과 영업 실적에 목매다는 사회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구조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만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절을 운영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편한 곳에, 찾아오기 편한 시간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꾸미고, 관심가질 만한 내용으로 알맹이를 채워야 한다. 시청률을 의식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불교도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 부처님이 절을 잘 운영하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던가?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사찰의 우선적인 과제인가? 의문이 든다.
이런 저런 걱정을 페이스북에 늘어놓으니 지인께서 “부처님이 절을 잘 운영하기 위해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스님은 고민을 하셔야 한다는 게 딜레마 아니겠습니까?”라고 댓글을 달았다.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콕 꼬집은 재치있는 댓글 덕분에,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찰 관리인 혹은 말사 주지이기 이전에, 부처님의 제자다. 내 능력으로 뛰어난 사찰 경영자, 탁월한 포교사까지 겸할 수는 없다. 부처님의 제자답게 살기에도 바쁘고 힘든 세상이다. 내 능력으로는 이마저도 버겁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제자로서 그럭저럭 굶어죽지 않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부처님의 제자로 산다고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이다.
정부의 지지율,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업의 영업 실적, 사찰의 신도수. 이런 것들에 연연해서 ‘잘돼야 할 텐데…’ 하며 무턱대고 초조해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위기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다.
혼자서 주거니 받거니 속으로 이야기 하다가 내가 뭐하나 싶어서 쓴웃음이 나온다. 장사가 안돼서 파리만 날리는 가게 주인이 다른 가게에 손님 많은 걸 보는 기분이다.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다. 얼마 전, 열흘이 넘어서야 겨우 주문한 물건을 받았다. 내가 읍내까지 나가서 택배차 지나는 길가에 기다리고 있다가 받아 왔다. 택배 회사 잘못 걸리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이것이 시골의 현실이다. 쇠락하고 있는 시골에 기생해서, 갈수록 외면당하고 있는 종교에 몸담고 있는 것이 지금 나의 현주소이다. 이런 현실을 망각한 채, ‘이런 벌판에 횅하게 서있는 교회는 뭘 먹고 살까?’ 걱정 아닌 걱정을 하던 자신의 순진함에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정부의 지지율은 TV프로그램으로 치자면 시청률이다. 광고로 먹고 사는 민영 방송사는 시청률이 곧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시청률이 나쁘면 프로그램이 폐지되기도 한다.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시청률에 목숨을 걸 수 밖에 없다. 오래된 속담에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말이 있다. 시청률을 끌어 올리려면, 쓰디 쓴 약처럼 좋긴 하지만 사람들이 꺼리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선 안된다. 시청률 지상주의는 시청자에겐 약이 아니라 독이다. 시청률 경쟁이 방송을 망치고 결국 시청자인 사회구성원들을 어리석게 만들듯, 정치인이 개인의 지지율에 연연해하면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기업의 영업 실적이 기업 경영을 좌지우지하면 기업 윤리나 기업이 추구하는 사회적 역할은 뒷전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 피해는 소비자인 사회 구성원에게 오롯하게 돌아간다. 지지율에 연연하고, 시청률과 영업 실적에 목매다는 사회는 스스로를 갉아먹는 구조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만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절을 운영해서는 안된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편한 곳에, 찾아오기 편한 시간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로 꾸미고, 관심가질 만한 내용으로 알맹이를 채워야 한다. 시청률을 의식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피디처럼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불교도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언제 부처님이 절을 잘 운영하기 위해 고민한 적이 있던가?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과연 사찰의 우선적인 과제인가? 의문이 든다.
이런 저런 걱정을 페이스북에 늘어놓으니 지인께서 “부처님이 절을 잘 운영하기 위해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스님은 고민을 하셔야 한다는 게 딜레마 아니겠습니까?”라고 댓글을 달았다. 한국 불교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콕 꼬집은 재치있는 댓글 덕분에,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나는 사찰 관리인 혹은 말사 주지이기 이전에, 부처님의 제자다. 내 능력으로 뛰어난 사찰 경영자, 탁월한 포교사까지 겸할 수는 없다. 부처님의 제자답게 살기에도 바쁘고 힘든 세상이다. 내 능력으로는 이마저도 버겁다. 지금까지 부처님의 제자로서 그럭저럭 굶어죽지 않고 살아왔다. 앞으로도 부처님의 제자로 산다고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뿐이다.
정부의 지지율,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률, 기업의 영업 실적, 사찰의 신도수. 이런 것들에 연연해서 ‘잘돼야 할 텐데…’ 하며 무턱대고 초조해 하면 될 일도 안 된다. 위기일수록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