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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해도 너무한 ‘전당장 공석’(空席)
2018년 01월 10일(수) 00:00
“21세기에는 관람객들이 능동적인 참여자가 될 수 있도록 미술관 역할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 2015년 9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주최한 예술포럼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니콜라스 세로타 영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장(69)은 “미술관 조직의 변화를 위해선 리더의 비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988년부터 테이트모던을 이끌어 온 그는 이날 미술관 신관증축사진을 보여주며 “신축 빌딩의 2개 층을 관객들의 창작활동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작년 가을, 필자는 세로타 관장의 ‘야심작’이었던 테이트모던 신관(블라바트니크 빌딩)을 찾았다. 미술관 신관 프로젝트에 막대한 기금을 쾌척한 사업가 레오나르도 블라바트니크의 이름을 딴 미술관은 관객과 예술이 만나는 놀이터였다. 지난 2009년 세로타 관장이 청사진을 내놓은 지 7년 만에 거둔 결실이다.

장수 관장으로 치자면 필립 드 몬테벨로(82)를 이길 사람이 없다. 1977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1년 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미술관의 꽃’으로 불리는 컬렉션을 다수 유치했다. 파울 클레 작품을 필두로 인상주의 컬렉션, 루벤스, 베르메르, 반 고흐 등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걸작들을 품에 안았다. 30년간 미술계 큰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 기증을 이끌어 낸 덕분이다.

홍콩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 세계적인 미술품 컬렉터인 울리 지그(72)는 40년간 수집한 중국현대미술 작품 1500점을 홍콩 서구룡 문화지구(WKCD)의 M+미술관에 내놓았다. WKCD는 홍콩 정부가 3조 원을 들여 구룡 해안반도 12만 평에 조성하는 국책문화사업으로 규모나 콘텐츠 등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전당)과 비교되는 곳이다. 울리 지그가 M+미술관에 소장품을 기증하게 된 데에는 WKCD 초대 수장이었던 마이클 린치(전 호주 시드니오페라 하우스 대표)의 역할이 컸다는 후문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전당장 5차 공모가 또 무산됐다. 2015년 11월 전당개관 이후 2년 2개월에 걸쳐 실시한 다섯 번의 공모가 ‘적격자 없음’으로 결론나면서 전당장 공석사태로 인한 파장이 우려되고 있다. 더불어 광주 문화수도 조성의 컨트롤 타워인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 문화전당 운영을 일부 위탁받은 아시아문화원 원장의 공석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문제는 전당장 공석사태에 따른 업무 공백이 심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전당 정상화와 옛 전남도청복원 등 현안을 추진하기 위해선 강력한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한 시점에서 새 정부는 오히려 옛 전남도청의 복원현안이 진전될 때까지 전당장 선임을 보류하겠다고 한 것이다. 옛도청복원이 간단치 않은 사안임을 감안하면 당분간 수장 없는 전당으로 방치하겠다는 말이다.

세상에 오래 비워도 괜찮은 ‘자리’는 없다. 전당장의 장기간 공백은 업무 부실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혹시 정부가 전당장의 역할과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