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나무 생각’] 나무는 어떤 꿈을 꾸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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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나무 이야기를 하던 중에 시청자로부터 생뚱맞은 질문을 받았다. “나무에게도 꿈이 있나요? 있다면 나무는 어떤 꿈을 꾸나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무의 꿈’이라니.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변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무에서 사람살이의 무늬, 즉 인문의 향기를 찾으려 애면글면하는 나의 작업에 ‘알맞춤한’ 질문을 찾아낸 배려였을 테다. 나무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생명체로 받아들이면서 나무도 사람처럼 꿈을 꾸느냐는 질문을 끌어낸 것이다.
나무의 꿈! 생방송이어서 순발력 있게 대답해야 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선 꿈이란 대관절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능히 할 수 있지만, 여태 다 이루지 못한 것을 일쑤 ‘꿈’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서 언제나 새로 시작하는 출발선에 설 때면 이번에만큼은 꼭 이루겠다고 마음먹는 목표를 갖게 되고 그걸 사람들은 꿈이라고 한다.
나무의 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할 수 있지만 여태 다 이루지 못한 것,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이루어야 할 것, 나무의 꿈은 바로 그것이리라.
세상의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 나무 역시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난다. 뿌리를 내리고 여린 싹을 틔우는 순간부터 나무는 그 목적과 이유를 실현하기 위해 꿈틀거린다. 뿌리는 곧바로 촉촉한 땅을 파고들어가 물을 빨아들이고, 지상의 이파리는 공기구멍으로는 이산화탄소를 끌어모으며, 잎 표면의 엽록소는 내리쬐는 햇살을 받아들인다. 지상의 모든 생명의 양식이 될 양분을 지어내는 일은 그렇게 식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바로 광합성이다. 이 땅의 어떤 생명체도 흉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그 일만큼은 나무가 가장 잘하는 일이다.
나무는 수굿이 양분을 지어 꽃을 피운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무의 현저한 특징이다.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을 번식시키고 나무가 자기 종족의 생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절차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은 이제 꽃가루받이를 이뤄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혼인이다. 가장 강한 유전자와의 만남, 즉 성공적인 혼사를 이루려면 곤충의 수고를 빌려야 한다.
나무는 그래서 자신의 혼사를 이뤄 줄 곤충을 위한 양식까지 마련해야 한다. 꿀과 꽃밥은 꽃의 혼인을 도와주는 매개 곤충에 대한 나무의 적절한 보상이다. 결국 나무는 꽃 피우는 데에 필요한 양분 이상의 양분, 즉 매개 곤충의 양식까지 지어야 한다. 그래도 중요한 절차가 남았다. 혼사를 마친 뒤에 맺은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어미와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뿐 아니라, 더 넓은 생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무는 씨앗을 멀리 보내야 한다. 씨앗은 바람결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고,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가 그들의 배설물을 타고 빠져나온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이룰 수도 있다. 역시 나무 스스로 완결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나무살이의 성공적 실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생명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다른 생명체 없이 나무는 살 수도 없고, 더더구나 자손을 번식시키며 종족을 유지하는 존재의 목적을 실현할 방도가 없다. 벌과 나비가 건강해야 나무도 훌륭한 혼사를 이룰 수 있고, 새와 짐승이 튼튼해야 자신의 씨앗을 멀리 보내 생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나무는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즉 지상의 모든 생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분을 짓는 일에 매진한다. 그동안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일이다. 그건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말없이 홀로 살아가는 생명체이지만, 나무는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공생의 생명체다. 나무가 새로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면서 꿈을 꾼다면 그건 무엇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풍요롭게 살아가는 일, 즉 공생의 생명 세상을 실현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고작 달력의 숫자 하나만 바뀔 뿐이지만, 누구라도 새로운 꿈을 설계하게 마련인 시절이다.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지만 아직 채 이루지 못한 일, 그건 곧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땅의 모두가 꿈꾸는 새해에 꼭 이뤄야 할 가장 절박한 꿈이다.
〈나무 칼럼니스트〉
뜻밖의 질문이었다. ‘나무의 꿈’이라니.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변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나무에서 사람살이의 무늬, 즉 인문의 향기를 찾으려 애면글면하는 나의 작업에 ‘알맞춤한’ 질문을 찾아낸 배려였을 테다. 나무를 사람과 더불어 사는 생명체로 받아들이면서 나무도 사람처럼 꿈을 꾸느냐는 질문을 끌어낸 것이다.
나무의 꿈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무가 할 수 있지만 여태 다 이루지 못한 것, 그리고 남은 생애 동안 이루어야 할 것, 나무의 꿈은 바로 그것이리라.
나무는 수굿이 양분을 지어 꽃을 피운다. 겉으로 드러나는 나무의 현저한 특징이다. 꽃을 피우는 것은 자손을 번식시키고 나무가 자기 종족의 생존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필수 절차다. 화려하게 피어난 꽃은 이제 꽃가루받이를 이뤄야 한다.
사람으로 치면 혼인이다. 가장 강한 유전자와의 만남, 즉 성공적인 혼사를 이루려면 곤충의 수고를 빌려야 한다.
나무는 그래서 자신의 혼사를 이뤄 줄 곤충을 위한 양식까지 마련해야 한다. 꿀과 꽃밥은 꽃의 혼인을 도와주는 매개 곤충에 대한 나무의 적절한 보상이다. 결국 나무는 꽃 피우는 데에 필요한 양분 이상의 양분, 즉 매개 곤충의 양식까지 지어야 한다. 그래도 중요한 절차가 남았다. 혼사를 마친 뒤에 맺은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야 한다. 어미와 경쟁해서는 살아남기 어려울 뿐 아니라, 더 넓은 생존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나무는 씨앗을 멀리 보내야 한다. 씨앗은 바람결을 타고 날아갈 수도 있고, 새나 짐승의 먹이가 되었다가 그들의 배설물을 타고 빠져나온 자리에 새 보금자리를 이룰 수도 있다. 역시 나무 스스로 완결할 수 없는 일이다.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나무살이의 성공적 실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생명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홀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다른 생명체 없이 나무는 살 수도 없고, 더더구나 자손을 번식시키며 종족을 유지하는 존재의 목적을 실현할 방도가 없다. 벌과 나비가 건강해야 나무도 훌륭한 혼사를 이룰 수 있고, 새와 짐승이 튼튼해야 자신의 씨앗을 멀리 보내 생존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나무는 그래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즉 지상의 모든 생명을 배불리 먹일 수 있는 양분을 짓는 일에 매진한다. 그동안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일이다. 그건 결국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생명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말없이 홀로 살아가는 생명체이지만, 나무는 더불어 살지 않을 수 없는 공생의 생명체다. 나무가 새로 다가올 계절을 맞이하면서 꿈을 꾼다면 그건 무엇보다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와 더불어 풍요롭게 살아가는 일, 즉 공생의 생명 세상을 실현하는 일 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다.
고작 달력의 숫자 하나만 바뀔 뿐이지만, 누구라도 새로운 꿈을 설계하게 마련인 시절이다.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지만 아직 채 이루지 못한 일, 그건 곧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일이 아닌가 싶다. 이 땅의 모두가 꿈꾸는 새해에 꼭 이뤄야 할 가장 절박한 꿈이다.
〈나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