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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헌권 서정교회 담임 목사] 길거리에 나선 방송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2017년 11월 17일(금) 00:00
“…돌아가야 할 것은 돌아가야 하네/ 담벼랑에 붙어 있는 농담거리도/ 바보같은 라디오도 신문 잡지도/ 저녁이면 멍청하게 장단 맞추는/ TV도 지금쯤은 정직해져서/ 한반도의 세상 끝에 놓여져야 하네.”(양성우 ‘겨울 공화국’)

양성우 시인이 감옥에 있을 때(1977년) 고은 시인과 조태일 시인이 서둘러 만든 시집입니다. 시인은 라디오, 신문, 잡지, TV 등 언론매체를 꾸짖고 있지만 당시 언론인들의 침묵을 비판하는 것이지요.

익어가는 가을 거리에 나뭇잎들이 춤을 추고 있지요. 길거리에서 치열하게 참된 방송인들이 되기 위해서 서명을 받으며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감동입니다. 저도 함께하는 동안 아직도 갈 길 이 멀지만 그래도 든든한 방송인들의 건강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으면 예외없이 독재정권이 되지요. 그들이 새벽에 제일 먼저 점령하는 곳이 방송국과 신문사이지요.

언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또한 사회의 목탁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요. 이처럼 언론은 사실을 보도하고 진실을 밝히는 역할을 의미합니다.

근현대사 구한말 전제군주제 시대에서 일제 강점기. 이후 해방과 함께 민족분단 시대. 군사독재정권과 광주 민중항쟁, 6·10 민주화운동, 촛불 시민 혁명등 굴절된 역사에 언론 역시 굴절되었지요. 세월호 참사 때는 ‘기레기’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저는 언론 가운데 방송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방송은 무엇보다 공정한 보도와 논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론의 광장을 제공함으로써 여론 형성에 이바지하는 것으로, 공정성은 정확성이지요. 그래서 공영방송은 특정 이익 집단의 신념, 사상을 지지·옹호할 수 없도록 규제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부끄럽고 말하기에 불편한 독재 권력의 입과 수족이 되었지요. 물론 거기에 저항하고 올곧음을 위하여 온몸으로 투쟁하다가 해직과 고통을 당하는 많은 방송인도 있었지요. 특히 80년 언론학살에 해직된 언론인들이 ‘언론의 자유는 모든 자유에 우선한다’ 는 신념으로 투쟁을 했지요.

지금 길거리에 있는 방송인들이 파업 중에 있지만 한때는 사랑을 받았습니다. 뉴스와 시사, 드라마, 예능, 라디오 등에서 용감하게 고발하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파괴했지요. 뉴스를 사유화하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을 학살했습니다. 해고, 중징계, 유배 등 야만의 시절이 된 것입니다. KBS와 MBC는 야수처럼 장악되었지요. 처참하게 망가진 MBC는 이명박 정권 때 국정원이 개입하여 파괴 공작을 했습니다. 인적 학살과 시사프로그램 퇴출이지요. 이를 위해서 국정원은 노조 무력화를 핵심 과제로 삼았지요. 결국 공영방송을 국민적 합의도 없이 민영화한 것입니다. 길거리에서 기자, 피디, 아나운서 등을 뵙게 되었지요. 전국적으로 2000여 명이 참여한 총파업 열기는 그만큼 공정 방송의 갈망이 뜨거웠다고 봅니다.

KBS 역시 지난 9월 4일부터 총파업을 시작했지요. 파업에 나선 이유는 단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방송 장악 9년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동안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빼앗아간 공영방송을 주인인 국민의 품으로 돌려드리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방송인들은 권력과 차별에 맞선 진실을 찾는 것입니다. 가장 낮은 곳에서 약자와 소외된 이들의 땀과 눈물을 담아내며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주인인 시청자가 제대로 대접받는 방송을 만들겠다는 마음인 것을 압니다.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승리해 국민에게 돌려 드리겠다는 진실과 정의의 길에 있는 분들과 연대합니다.

결국 MBC는 김장겸 사장 해임으로 공영방송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촛불 시민 혁명이 없었다면 MBC·KBS파업은 불가능했습니다. 광주민중항쟁때 광주MBC 건물이 시민의 손에 불탔지요. 그 뒤 광주 MBC는 어떤 권력의 탄압에도 시민 편에 서는 것을 지표로 삼았지요. 초심을 잃지 마십시오.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의 그날 나뭇잎들도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준비에 응원합니다. 차가워진 날씨에 서로서로 손을 잡고 소통과 공감, 그리고 연대로 참된 방송을 만들어가는 일에 함께합니다. 고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