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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묵 선덕사 주지] 미얀마의 인종 갈등
2017년 09월 22일(금) 00:00
한 잔의 커피가 어떻게 나에게 오게 되었는가를 생각해본다. 열대지역의 뜨거운 햇볕 아래 커피 농장이나 야생의 커피나무에서 열매를 채취하는 농부들, 과육을 없애고 여러 번 씻어 말린 생두는 자루에 담겨 바다를 건너는 긴 여행을 한 끝에 어느 커피집의 기계에서 뜨거운 불길에 구워진다. 구수한 커피향 속에는 열대의 햇빛과 흙, 농부의 손길과 땀방울과 웃고 우는 삶의 역사가 담겨있고, 바다 냄새와 뱃사람들의 한숨도 스며들었으리라. 모든 존재들은 제각각 개체로 나뉜 것처럼 보이지만 무한한 관계 맺음을 통해 지금 이 순간 한 잔의 커피로 드러나고 있으니 하나 속에 전체가 머금어진다.

커피집에서 르완다 커피를 만나면 반가움에 꼭 한 봉지 사게 된다. 맛과 향도 훌륭하지만, 르완다에서 왔다는 이유가 더 크다. 르완다는 약 20년 전까지 심각한 내전을 겪은 나라다. 다수인 후투족과 소수의 투치족의 갈등으로 공식 통계로 150만, 비공식 통계로는 200만 이상이 죽임을 당했다. 이 갈등의 배후에는 서방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가 있다. 독일에 이어 르완다를 지배한 벨기에는 소수 민족인 투치족을 식민지 지배의 도구로 사용함으로써 민족간 분열과 갈등을 만들어 민중이 독립운동으로 결집하는 것을 막고 식민지 지배를 용이하게 하고자 하였다. 식민지 시절 차별에 시달린 후투족에게 잠재된 분노의 씨앗은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지금 르완다는 유혈충돌의 상처를 극복하고 화합과 재건을 위해 애쓰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 경제 개혁과 올바른 정치에서 모범이 되는 나라가 되었다. 갈등의 이름인 후투와 투치는 르완다에서 사용할 수 없는 금지어가 되었다.

지금 미얀마의 리카인 지역에서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미얀마 인구의 70%에 해당하는 버마족을 중심으로 한 정부군이 이슬람 신앙을 가진 소수민족 로힝야족을 공공연히 핍박하고 공격하고 있다. 로힝야족은 전 세계에서 가장 핍박받는 민족이 되었다. 일부는 불교가 이슬람을 공격한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리카인 지역의 문제는 단순한 종교 갈등이 아니라 르완다와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열강의 식민지 정책이 탄생시킨 역사적 비극이다. 영국은 소수 민족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이주시켜 식민지 지배 도구로 사용했다. 심지어 로힝야족을 무장시켜 버마족을 집단 학살하기도 했다. ‘일본보다 일본의 앞잡이들이 더 우리를 괴롭혔다.’고 하듯이,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영국보다 로힝야족이 더 현실적인 고통을 주는 식민지 지배자였던 것이다. 미얀마가 식민지에서 독립하게 되자 그동안 억압과 소외에 시달린 버마족의 분노는 로힝야족에게 향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월에 “로힝야족은 단지 그들의 문화와 이슬람 신앙대로 살기 원한다는 이유로 고통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것은 역사적인 통찰 없이 종교 갈등으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두려워하거나 힘이 없어 잠잠한 것이 아니라오. 어찌 지혜로운 이가 어리석은 이와 더불어 싸우리오. 비록 어리석은 이가 화를 낼지라도 지혜로운 이는 그와 싸우지 않습니다. 만약 어리석은 이가 화를 내고 욕을 할지라도 지혜로운 이는 능히 참아내어 자신도 이롭고 상대도 이롭게 합니다. 어리석은 이는 이런 이치를 모르기에 상대를 힘으로 제압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려 합니다. 어리석은 이는 자신의 힘만 믿고 화내며 욕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능히 참음으로써 언제나 승리합니다.”(기세경)

미얀마는 인구의 90%가 불교인이며, 오랜 불교 전통을 유지하고 있어서 대표적인 불교국가라고 불린다. 그리고 많은 불교인들은 불교가 비폭력 평화 전통을 유지해온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지금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로힝야족 탄압은 불교도로서 매우 참담하고 부끄러운 상황이다. 갈등 속에 불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업이 만든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면 더 나은 역사를 향한 업의 전환을 어떻게 할 지 살피는 것이 불교적인 자세이다. 화해와 평화로 전환해야 할 때는 내일이 아니라 ‘지금 여기’이다. 그리고 화해와 평화를 일굴 주인공은 누구보다 불교인이어야 한다. 어디 미얀마만 그러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