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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에서-김진구 우산중학교 교감] 블라인드냐 선착순이냐
2017년 07월 11일(화) 00:00
‘선착순’ 하면 군대나 신상품 첫날 또는 마트의 사은품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군복무 시절 소대장 기분이 언짢으면 지정된 목표물을 돌아오는 선착순을 시키는데 꼭 1등만 열외를 시키고 다시 돌린다. 두 번째 돌 때, 첫 번째의 2등은 지쳐서 못 달리고 적당히 달렸던 친구가 1등을 한다. 어떤 친구는 아예 처음부터 꼴등을 작정하고 슬슬 달리기에 대책이 안서는 벌이 선착순이다. 한정 판매 신제품을 사기 위해 선착순으로 길게 늘어선 모습이나 간고등어 100마리를 선착순으로 받기 위해 북적거리는 마트의 광경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썩 좋지 않은 이미지의 ‘선착순’으로 사원을 뽑는 회사가 있다. 일본에서 학위를 받고 일본 기업에 대한 연구와 집필활동을 하고 있는 제자를 통해 알게 된 회사다. 십 수년을 일본에서 연구생활을 하면서 그가 펴낸 ‘괴짜 경영학’은 세계적인 불황에도 호황을 누리는 행복한 강소기업 9개를 소개한 책이다. 책의 제호처럼 괴짜 같은 내용이 많다. 그리고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아니라 강소기업이란 용어가 신선했다. 그중 소개하고자하는 기업은 ‘주켄공업’이다. 지방에 있는 작은 회사이지만 ‘100만분의 1그램’ 초극소형 톱니바퀴를 개발한 세계 최고의 정밀 가공 회사이다.

저자가 소개한 주켄공업의 두 가지 특징은 ‘지속적인 저성장으로 사원의 최대행복 추구’와 ‘무시험 선착순 입사제도’이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고성장을 추구한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지속적으로 저성장을 바라는 회사는 처음이다. 회사의 이익이 우선이 아니라 회사원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회사 목표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더더욱 기이한 것은 50년 가까이 시행해온 신입사원 선착순 모집이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따지지 않으니 중졸도 있고, 고교 중퇴자도 있고, 폭주족도 있고, 연산이 제대로 안 되는 소녀도 있단다. 학력도 안 보고 경력도 안 본다. 원서를 접수하면 ‘면접’이 아니라 ‘면담’을 하는데 지원자에 대한 질문은 없고, 회사의 급여제도와 휴가제도를 자세히 설명해 주며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희망사항’을 듣는 것이 끝이란다. 이렇게 선착순으로 뽑은 주켄공업 마쓰우라 사장의 인재육성법은 ‘규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녀 차별이 없고, 학력 차별도 없다. 정년도 없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은 주켄공업. 이런 회사 분위기에 때문에 선착순으로 뽑힌 사원들은 2, 3년이 지나면 눈빛이 달라지고, 십 여 년 후부터는 세계적인 장인이 되는가 하면, 고교 중퇴자가 학회에서 발표뿐만 아니라 교수들 앞에서 강의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미분 적분을 모르는 이들이 입사해서 몇 년이 지나면 CAD의 달인이 되고, 미적분 공식으로 정밀기계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한 기업의 특이한 사례여서 보편화시키기는 어렵지만 채용방법 논의가 한창인 지금 의미 있는 사례이기에 소개한 것이다.

공공기관의 채용방식이 바뀔 모양이다. 편견을 막기 위해 블라인드를 친다고 한다. 사진, 학력, 출신지역, 신체조건, 가족관계의 기록이 금지된다. 공공기관부터 바로 시행한 후 민간기업으로 확산시킨다고 한다. 장막을 친다는 것은 고립과 차단을 의미한데 기회균등을 위해 장막을 친다는 것이다. 대체로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각론에는 상반된 의견이 상존한다. 그래서 최선책이 아니라 고육책이다. 기회의 균등이 결과의 균등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시행해 보고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면 ‘블라인드 대입제도’로 확대되지 않을까 예견해 본다.

중등교사 임용시험 면접관과 수업 실연 평가자로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 심사하기 전에 담당 장학관으로부터 여러 가지 참고사항을 전달받는다. 한번은 면접이나 평가할 때 웃지 말아달라는 애매한 부탁을 했다. 너무나 경직된 수험생들에게 긴장을 풀어주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밝은 표정으로 웃고, 고개를 끄덕여주곤 하는데 탈락한 수험생들의 항의가 간혹 있다고 한다. 분명히 평가자나 면접관이 긍정적으로 반응했기에 불합격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민감하다. 블라인드 채용은 면접이 관건이다. 인공지능(AI) 면접관을 도입하자는 의견도 있다.

7년 동안 컵밥에 몸 버리고 머리카락까지 빠진 어느 취업준비생의 간절한 한마디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란다. 이 시대의 큰 울음이고 진한 눈물이다. 블라인드든 선착순이든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방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