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규 원불교 광주교구 사무국장]우리의 부처님은 누구입니까?
부처님 앞에서 큰 절을 드리고 공양을 드리기 위해 온 한 손님이 방문했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부처님이 보이지 않아 이렇게 질문을 한다. “귀 교의 부처님은 어디에 계시나이까?” 대종사님은 잠시 기다려보라 한다. 잠시 후 차 한 잔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중 밭에서 일을 마치고 온 제자들이 땀범벅이 되어 괭이와 호미를 하나씩 어깨에 들이매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러자 대종사님은 그 선객을 보고 “우리 부처님들이 저기 들어오십니다”라고 말씀하시고 그 선객은 그 말뜻을 이해하고는 큰 절을 올렸다 합니다. 이는 부처님이 법당에 모셔진 불상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죄주고 복주는 참된 부처님이고 하나님이며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얼마 전 부처님 오신 날에 서울 조계사에서 대선후보들이 모두 모여 인류의 행복을 기원하며 합장했다. 또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비정규직, 노인, 아동, 장애인, 여성, 군인 등 다양한 위치에서 땀흘리며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고 아픔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들을 찾아가서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후보들을 보며 실날같은 희망을 잡고 이 사회가 정의로운 사회가 되길, 자신이 처한 위기상황을 잘 해결해주기를 바라며 투표를 했을 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선거철만 되면…”이라는 말이 이번에는 다시금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4월 한 달간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철회를 위해 거의 살다시피 있었습니다. 롯데c.c골프장 입구 진밭평화교당 천막에서 밤을 새면서 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 이렇게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이들이 많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하게 처한 사람들이 10년 20년 넘게 일인시위 및 천막농성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송전탑 할머니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당해고 피해자들 등등. 그들은 낮은 위치에서 성실히 사회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온 이들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부처님들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합장하며 소원성취를 빌었던 그 마음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 또한 몇 년 전 강정마을을 찾아가고, 밀양을 찾아갔지만 사드철회의 진밭천막에 앉아 내가 그들의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 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광주에는 5·18민주광장에 5·18진실규명과 옛 도청건물 복원을 위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오늘까지 247일째 그 외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듯이, 우리가 부처님에게 합장공경의 마음으로 소중한 음식을 진설하듯이, 그들이 우리의 참 부처님이므로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경청해야 하고, 그들이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해결돼야 할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행동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지난 정권이 4년간 했던 소통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하룻 동안의 소통이 더 많았다고들 합니다. 언론매체를 보고 있자면 ‘나라가 변했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변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변해야 할 것들이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의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운이 솟습니다.
어느 절에 며느리가 말을 듣지 않아 불화가 생겨 부처님에게 기도하고자 온 어느 노부부에게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많은 돈을 놓고 가면 잘 해결될테니 기도비나 많이 놓고 가시오’라는 기복론으로 말할텐가요? 아니면 ‘그것은 당신의 운명이니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세요’라고 운명론으로 말할텐가요?
불공을 드릴 대상을 먼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기도할 돈으로 며느리에게 맛난 음식도 사주시고, 예쁜 옷도 선물도 해보시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실지 불공할 대상에게 불공을 하면 그 며느리가 노부부에게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지고 서로의 관계는 점점 좋아질 것이고 관계도 원만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지불공’입니다.
선거철에 대통령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촛불에서 외쳤던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외침, 각종 아픔을 가지고 눈물로써 호소했던 많은 사람들, 그 일들이 이념이나 사상 혹은 현재 법률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하더라도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많은 이들이 관심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불공일 것입니다.
상식적인 일들이 진행되고, 부당한 권력을 이용해 사적이득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국민이 정한 분배의 구조에서 어긋나 가진자들이 더욱더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는 부당사회를 처벌하고 균등한 분배구조의 사회환경을 조성시켜주는 것. 그것들이 바로 국민에 대한 불공이고, 한표 한표로 일꾼을 뽑은 이유일 것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주인을 불공하지 않는 사회로 다시 회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말로만 국민 국민 하는 언어불공이 아닌 실지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대상에게 불공하는 ‘실지불공’이 돼야 할 것입니다.
저는 4월 한 달간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철회를 위해 거의 살다시피 있었습니다. 롯데c.c골프장 입구 진밭평화교당 천막에서 밤을 새면서 있다 보니 우리 사회에 이렇게 억울하고 가슴 아픈 이들이 많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억울하게 처한 사람들이 10년 20년 넘게 일인시위 및 천막농성을 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송전탑 할머니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부당해고 피해자들 등등. 그들은 낮은 위치에서 성실히 사회의 역할에 충실하며 살아온 이들이었으며, 앞에서 말한 부처님들이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합장하며 소원성취를 빌었던 그 마음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나 또한 몇 년 전 강정마을을 찾아가고, 밀양을 찾아갔지만 사드철회의 진밭천막에 앉아 내가 그들의 위로를 받고 격려를 받을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서 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우리 광주에는 5·18민주광장에 5·18진실규명과 옛 도청건물 복원을 위한 천막농성을 하고 있으며 오늘까지 247일째 그 외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에게 큰 절을 올리며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듯이, 우리가 부처님에게 합장공경의 마음으로 소중한 음식을 진설하듯이, 그들이 우리의 참 부처님이므로 그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경청해야 하고, 그들이 상처받은 마음을 보듬어 안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해결돼야 할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며 행동해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지난 정권이 4년간 했던 소통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하룻 동안의 소통이 더 많았다고들 합니다. 언론매체를 보고 있자면 ‘나라가 변했구나’ 새삼 느끼게 됩니다. 변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앞으로 변해야 할 것들이 변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의 마음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운이 솟습니다.
어느 절에 며느리가 말을 듣지 않아 불화가 생겨 부처님에게 기도하고자 온 어느 노부부에게 당신은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많은 돈을 놓고 가면 잘 해결될테니 기도비나 많이 놓고 가시오’라는 기복론으로 말할텐가요? 아니면 ‘그것은 당신의 운명이니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세요’라고 운명론으로 말할텐가요?
불공을 드릴 대상을 먼저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부처님에게 공양하고 기도할 돈으로 며느리에게 맛난 음식도 사주시고, 예쁜 옷도 선물도 해보시라’고 말씀드릴 것입니다. 실지 불공할 대상에게 불공을 하면 그 며느리가 노부부에게 대하는 태도는 분명 달라지고 서로의 관계는 점점 좋아질 것이고 관계도 원만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실지불공’입니다.
선거철에 대통령이 만났던 모든 사람들, 그리고 촛불에서 외쳤던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외침, 각종 아픔을 가지고 눈물로써 호소했던 많은 사람들, 그 일들이 이념이나 사상 혹은 현재 법률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 하더라도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많은 이들이 관심가져야 합니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들어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불공일 것입니다.
상식적인 일들이 진행되고, 부당한 권력을 이용해 사적이득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국민이 정한 분배의 구조에서 어긋나 가진자들이 더욱더 착취하고 부를 축적하는 부당사회를 처벌하고 균등한 분배구조의 사회환경을 조성시켜주는 것. 그것들이 바로 국민에 대한 불공이고, 한표 한표로 일꾼을 뽑은 이유일 것입니다.
어느 상황에서도 주인을 불공하지 않는 사회로 다시 회귀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말로만 국민 국민 하는 언어불공이 아닌 실지로 피부로 체감할 수 있도록 대상에게 불공하는 ‘실지불공’이 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