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조발그니 서산동성당 주임신부] 일치가 갈등을 이긴다
2017년 03월 24일(금) 00:00
탄핵이 인용됐다. 서울에 살지 않아서인지 태극기를 들고 있는 어르신들을 직접 본 적은 없다. 다만 지면이나 티비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보게 된다. 정교분리란 정치와 종교, 혹은 교회와 국가가 분리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현대 국가가 종교적 중립성을 유지해 권력과 종교를 결부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헌법 20조는 우리나라 국민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즉 국가가 국민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해서는 안되며,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체제는 종교적 믿음의 대상이 돼서는 안된다. 이것이 정교분리이다.

헌법재판소에서 기도를 하거나 대한민국을 신에게 맡긴다며 구국기도회를 하는 것은 그래서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태극기를 들고 전 대통령 자택에서 집회를 하는 이들은 정치를 신격화시켜버린 것 같다. 합리나 이성이 아니라 맹목이며 절대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고백같아 보여 안타깝다.

국민 대다수를 넘어 헌법재판소의 재판관 전원이 일치해 파면한 대통령을 왜 그리 따르는 것인지 이것을 통해 얻는 이익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그들이 지난 믿음에 대한 배신이 더 어려워서 그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로인해 이미 그들과 우리는 분리돼 있다. 한시대와 한나라를 사는데도 그들과 우리는 나뉘어 있는 것 같다.

장미대선이 다가오면서 각 당마다 경선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정책을 논하며 더 나은 나라를 위해 무엇이 최선이어야 하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데 대통령이 탄핵된 지금에도 정책에 대한 공방 전에 인신공격이 먼저 이뤄지고 있다. 이것을 검증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보다 자신들의 정책을 어떻게 펼쳐나갈지가 더 먼저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갈등은 있을 수 밖에 없다. 교종 프란치스코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런 말을 하신다.

“갈등은 무시하거나 덮어 버릴 수 없습니다. 갈등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그러나 갈등의 덫에 갇힌 채 그대로 머물면, 우리는 전망을 잃어버립니다. 지평은 제한되고 실재 자체는 산산이 부서지고 맙니다. 갈등 속에 갇혀 있으면 우리는 실재의 심오한 일치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갈등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그냥 바라보다가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제 길을 갑니다. 그들은 자기들 생활을 계속해 나가려고 여기서 손을 씻어 버립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갈등 속으로 들어가 그 포로가 된 채 방향 감각을 잃고 그들 자신의 혼동과 불만을 제도에 투사하여, 일치를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제 3의 길도 있습니다. 이것이 갈등에 대처하는 최선의 길입니다. 곧 갈등은 기꺼이 받아들여 해결하고 이를 새로운 전진의 연결고리로 만드는 것입니다.”(226-227항)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3의 길이다. 국민을 갈라놓은채 내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드배치, 국정교과서, 쉬운 해고, 위안부 합의, 탄핵, 국정농단 등등 이 정부는 어느 한쪽 편을 들어 국민을 갈라놓았다. 국민과 국민을 갈라놓는 것은 식민지 제국이 식민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전략 중 하나였다. 우리는 이 갈등을 모른척하거나 그 안에 파묻혀 길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제3의 길을 택해야 한다. 갈등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이 갈등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연대와 평화가 필요하다.

“연대는 그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리고 도전과제로서 역사를 일구어 가는 방식이 됩니다. 역사는 갈등과 긴장과 대립이 다양한 형태의 일치로 연대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이이며, 여기에서 새로운 삶이 태어납니다.”(228항)

“평화의 전갈을 협상으로 이루어진 평화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일치가 모든 다양성을 조화시켜 준다는 확신을 선포하는 것입니다.”(230항)

교종 프란치스코의 말씀을 다시 새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