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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과의 한담(閑談)
2017년 03월 22일(수) 00:00
[강대석 남도향토문학연구원장]
“아얏! 저런 멍청이가 쥔도 몰라보네!”

닭장 앞에서 놀던 손녀가 거의 울상이다. 닭장 철망 사이로 새우깡을 넣어주자 수탉이 손가락을 찍은 것이다.

지난해 봄이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손녀가 교문 앞 노점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사달라고 졸라댔다. 할 수 없이 아내가 손녀를 데리고 가서 손 크게 네 마리를 사왔다. 그리고 사과박스 안에 신문지를 깔고 베란다에서 기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병아리가 우리집의 서열 1위였다. 손녀도 아내도 병아리 곁에 붙어살았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자 모두 관심이 사라지고 병아리는 온전히 내 몫이 되었다. 모이를 주는 일, 물을 주는 일 등 병아리 시중드는 일이 귀찮을 정도였다. 처음엔 며칠 살다가 죽을 줄 알았다. 그러나 병아리는 두어 달을 넘기며 모진 생을 이어갔다. 깃털이 나고 벼슬이 돋자 수탉이 두 마리 암탉이 두 마리란 걸 알았다. 그때부턴 아파트에서 기르기가 조금 부담이 되었다. 우선 사과박스 한 개로는 감당이 안 되고 똥 치우는 일이며 냄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는 수없이 시골집에 가져다 키우기로 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사셨던 시골집이 빈집으로 남아있어 집도 돌볼 겸 거기서 키우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먼저, 철물점에서 닭 철망과 각목, 지붕 썬라이트를 구입해 마당 한쪽에다 닭장을 지었다. 한나절을 품 들였지만 서툰 솜씨라 닭장은 산중 너와집 같았다. 닭을 갖다 풀어놓았다. 닭들은 새로 이사 온 집이 서먹서먹한 듯 한쪽 구석에서 서로 몸을 비비며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봐도 휑하니 닭장이 너무 넓었다. 이왕 키우려면 몇 마리 더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아내가 시골장터에서 중병아리 열 마리를 사왔다. 수탉 한 마리와 암탉 아홉 마리였다. 집에 수탉 두 마리가 있으니 성비는 맞을 것 같았다. 그런데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새 식구가 들어오자 집에 있던 녀석들이 텃세를 부리는 것이었다. 상대가 열 마리인데도 아랑곳 없었다. 약한 놈부터 보이는 대로 쪼아 댔다. 새로 온 녀석들은 수적으로는 우세했지만 단결을 몰랐다.

“야! 너희들이 뭉치면 이길 수 있어. 야! 멍청이야!”

손녀는 처음 네 마리를 깡패 닭, 나중 열 마리를 바보 닭이라 불렀다. 깡패 닭들의 행패는 며칠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친해질 때도 됐건만 깡패 닭들은 여전히 텃세를 부렸다. 바보 닭들은 벼슬에서 피가 나고 그중 두 마리는 시들시들 죽어 갔다. 고심 끝에 닭장을 나누어 대발로 칸막이를 치고 좁은 쪽엔 깡패 닭, 넓은 쪽에 바보 닭을 넣었다. 그러자 평화가 찾아왔다.

여름이 되자 수탉이 덜 트인 목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가끔 시골집에서 잘 땐 새벽을 알리는 수탉의 울음소리가 신선했다. 어느 날 제일 큰 수탉이 암탉을 데리고 남자노릇을 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수탉들의 월담으로 대발칸막이가 무너져 닭장이 통일이 되었다. 또다시 깡패 닭들의 행패가 시작된 듯했다. 그러자 제일 큰 깡패 수탉이 자기 팀보다 바보팀을 감싸며 행패를 막아섰다. 어느 사이 싸움이 없어졌다. 대장 수탉의 중재역할은 훌륭했다. 그럴 때는 그냥 닭대가리는 아닌 듯싶었다.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닭은 일곱 마리로 줄어들었다. 두 마리는 패싸움에 전사하고 나머지는 명절과 친지들 모임 등에 희생되었다.

요즘 대장 수탉의 횡포가 도를 넘어섰다. 암탉은 모두 제 차지고 다른 수탉은 얼씬도 못한다. 사납기가 보통이 아니다. 모이를 주거나 달걀을 내려 들어가면 사람한테도 공격을 한다. 아내는 물론 나한테도 달려든다. “이런 닭대가리! 주인을 공격 하냐?” 발로 밀고 막대로 위협해도 계속 달려든다. 승복을 모르는 악질이다.

“야! 너 그러다 탄핵당한다. 청와대 누구 못 봤어?” 봄볕이 제법 따갑다.



*은펜칼럼은 오피니언 기고 최우수작 수상자의 모임인 ‘은펜클럽’ 회원들의 칼럼을 싣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