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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형규 원불교 광주교구 사무국장] 루이16세 데자뷰, 그리고 정의
2017년 03월 17일(금) 00:00
세계사적으로 1789년은 매우 상징적인 해이며 중요한 해입니다. 바로 기존 유럽사회를 유지하던 군주국가를 시민혁명을 통해 무너뜨리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막이 오르게 된 것이죠.

루이16세는 정치적인 견해가 없었으며 자신감이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 루이15세가 죽은 뒤 자연스럽게 왕위를 물려받게 됐습니다. 하지만 정치에 대한 무지로 인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권력을 위임해 통치하는 것으로 재임초부터 왕의 위상이 추락하게 됩니다. 프랑스 전역에서 시민운동이 커져가고 있었지만 루이16세는 혁명의 불길이 스스로 꺼지리라는 기대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조치는커녕 사냥과 자물쇠, 돌조각 다듬는 개인취미시간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는 이 난관을 헤쳐나가기 위해 국면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전쟁에서 지게되면 자신의 권력을 되찾을 수 있을거라 판단하여 의회를 부추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시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전쟁의 의도를 의심한 파리시민은 튈르리궁에 쳐들어가 오히려 그곳을 점령하고 왕권을 일시정지시키고 국민공회로부터 사형 찬성 387표, 반대 334표로 사형을 선고받고 1793년 1월21일에 파리의 혁명광장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됩니다.

역사적인 과업을 수행한 프랑스 국민공회는 그러나 또다시 내부분열이 발생하고 국민공회의장에서 대중적인 변화를 취하던 자코뱅파는 왼쪽에 앉고, 체제를 고수하려는 지롱드파는 오른쪽에 앉았다해 좌파, 우파라는 말이 생겼고 현재까지도 그 개념은 통용이 되고 있습니다.

왜 굳이 300년이 넘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도 이야기하는가? 박근혜를 탄핵시킨 그 배경과 내용, 그리고 절차가 역사의 데자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탄핵이후 프랑스의회가 분열됐던 것처럼 우리들은 분열의 역사가 거듭되서는 안될것입니다. 좌파, 우파를 좌익과 우익이라는 말로도 표현합니다. 그것은 날개는 한쪽 날개만 있다면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만 지금의 시기가 왼쪽으로 날 시기인가, 아니면 오른쪽으로 날 시기인가에 따라서 좌익과 우익의 힘은 조절이 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좌익과 우익의 힘을 잘 조절해 사안에 따라 운전을 잘 해나가는 것이 바로 ‘중도’(中道)일 것입니다. 이는 현실세계의 이해관계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입장에 분명한 편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편이 생기는 것이 지극히 마땅한 것이며 편이 생긴다하여 죄책감을 가질 필요 또한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 편을 들때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그 편에 해당되는 이유가 내 개인적인 이득이 되는 이유인가? 아니면 상식적이고 보다 많은 이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당하지 않아야 된다라는 이유인가?

몇 년전 우리 사회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정의의 열풍을 일으킨 마이클 셀던교수는 한마디로 “정의란 모든 것을 고려해 일관된 관점에서 모든 것이 서로 맞아떨어질 때 그 정의의 개념이 정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좀 더 쉽게 말하면 인간으로서 상식적인 수준에서 객관적인 수준에서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것이 맞다라고 하는 것이 정의라는 것입니다.

이제 정치권에서는 보수,진보와는 상관없는 통일,안보논리로 좌파니, 우파니하는 이념논리로 국민을 편가르고, 당파의 이익에 따라 동(東)이니,서(西)니 하는 지역논리로 국민분열을 부추키는 구시대적 정치행위는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오직 ‘정의사회 구현’ 이라는 시대적 대사명을 가진 과제에 매진하여 적폐청산을 통한 개혁과 회복, 통합의 가치를 실현해가야 하겠습니다.

루이16세가 단두대앞에 섰을 때 마지막으로 한 말은 “짐은 죄없이 죽노라”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힘들고 아픈 것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이익이 아닌 더 나은 가치와 삶을 위해, 또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찢기게 아프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지도자일수록 필요한 덕목입니다. 바로 그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합니다.

탄핵은 끝이 아니라 어쩌면 시작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의사회 구현이라는 큰 가치아래 행복한 국민의 삶을 이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정의어든 죽기로써 실행하고, 불의어든 죽기로써 실행하지 말라.’ 이는 우리 사회가 맑고,밝고,훈훈한 사회가 되기 위해 변하지 않는 가치덕목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