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묵 선덕사 주지] 페미니스트 붓다
최근 몇 주간 주말엔 봄, 주중에는 겨울 추위가 느껴지는 가운데 절 뒷마당에는 이미 매화가 가득 피었다. 겨울을 움켜쥔들 오는 봄을 어찌 막을 것인가. 모든 것은 변한다는 진리는 사사로움 없이 모든 것에 두루 작용한다. 매화는 좋고 겨울은 싫다고 하면 사사로움 없는 변화의 진리 앞에서 헛되이 그것을 움켜쥐는 것이다. 저 매화꽃이 열흘을 어찌 장담할 것이며, 다시 겨울이 돌아올 때 얼마나 괴로우랴. 집착은 괴로움의 뿌리다. 꽃이 피니 좋고, 꽃이 시들어가니 좋고, 사람이 이렇게 태어나니 좋고 이렇게 삶이 깊어져가니 좋고, 몸이 짐스러울 때 떠나니 좋다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좋고 고맙다고 수용할 때 우리 삶은 보다 평화롭고 긍정적으로 될 것이다.
“붓다시여,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것처럼 여성은 영혼이 없는 존재이거나 업장이 두터워서 거룩함을 추구할 수 없는 것입니까? 여성은 수행을 하더라도 진리를 이해하고 진리에 맞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까?”
“오, 좋은 벗 아난다여, 그렇지 않습니다. 여성이라도 훌륭한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거룩한 삶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붓다시여, 그렇다면 여성들이 거룩한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십시오. 우리 공동체는 그동안 불가촉천민과 노예계급 사람들이 이 공동체 안에서 계급 없이 서로를 좋은 벗으로 부르면서 평등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여성들은 천민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가르침을 듣기 어렵고, 가르침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이 거룩한 삶을 성취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벗 아난다여,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동체 회의를 소집해 안건을 제안해주십시오. 나는 한 달 전 카필라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자고 공동체에 제안했지만 부결됐습니다. 그래서 가장 통과 가능성이 높은 이 곳 웨살리로 한 달 동안 걸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부결된 안건을 같은 사람이 다른 지역의 수행공동체에서 제안하는 것은 규칙에 맞지 않으니 그대가 역할을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2600여 년 전, 인도 사회는 신을 섬기는 바라문교가 사회를 지배했고, 신의 이름으로 억압적 사회제도를 만들고 유지했는데, 그 제도에 따르면 하층 계급과 여성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붓다는 하층 계급과 여성이 인격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옹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당시 사회의 최상층인 종교인이 되도록 출가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가톨릭은 아직까지 여성 성직자가 없고, 개신교는 최근 들어서야 일부에서 여성 목사를 인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니 우리나라에서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 불과 70년 전의 일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이며, 혁명적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야말로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지난 수요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그보다 이른 지난 일요일은 석가모니 붓다의 출가 기념일이었다. 출가는 자신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경제적 환경과 가치관을 버리고 바꾸는 것으로, 과거와의 혁명적 단절이며 전환이다. 출가는 목적은 끊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도 출가를 앞둔 싯다르타처럼, 보다 향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혁명적 단절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이 필요한데,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전쟁이 끝나고 어려웠던 시절에 박정희라는 뗏목이 유용했지만, 그것은 어제의 길이지 오늘의 길이 아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강을 건넌 사람이 뗏목이 고맙다고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시대, 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출가할 것인가?
“붓다시여, 그렇다면 여성들이 거룩한 삶을 성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십시오. 우리 공동체는 그동안 불가촉천민과 노예계급 사람들이 이 공동체 안에서 계급 없이 서로를 좋은 벗으로 부르면서 평등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여성들은 천민과 마찬가지로 거룩한 가르침을 듣기 어렵고, 가르침대로 실천하면서 살아가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우리 공동체 안에서 여성들이 거룩한 삶을 성취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습니까?”
“좋은 벗 아난다여,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공동체 회의를 소집해 안건을 제안해주십시오. 나는 한 달 전 카필라에서 여성의 출가를 허용하자고 공동체에 제안했지만 부결됐습니다. 그래서 가장 통과 가능성이 높은 이 곳 웨살리로 한 달 동안 걸어 왔습니다. 그렇더라도 이미 부결된 안건을 같은 사람이 다른 지역의 수행공동체에서 제안하는 것은 규칙에 맞지 않으니 그대가 역할을 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2600여 년 전, 인도 사회는 신을 섬기는 바라문교가 사회를 지배했고, 신의 이름으로 억압적 사회제도를 만들고 유지했는데, 그 제도에 따르면 하층 계급과 여성은 독립된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그런데 붓다는 하층 계급과 여성이 인격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옹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들을 당시 사회의 최상층인 종교인이 되도록 출가의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가톨릭은 아직까지 여성 성직자가 없고, 개신교는 최근 들어서야 일부에서 여성 목사를 인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아니 우리나라에서 여성에게도 투표권을 달라고 외쳤던 것이 불과 70년 전의 일이라는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이며, 혁명적 결정이라고 할 것이다. 석가모니 붓다야말로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지난 수요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그보다 이른 지난 일요일은 석가모니 붓다의 출가 기념일이었다. 출가는 자신을 보다 향상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사회경제적 환경과 가치관을 버리고 바꾸는 것으로, 과거와의 혁명적 단절이며 전환이다. 출가는 목적은 끊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다. 싯다르타는 생사의 괴로움을 해결하고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사회도 출가를 앞둔 싯다르타처럼, 보다 향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와 혁명적 단절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하겠다.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뗏목이 필요한데, 강을 건너고 나면 뗏목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전쟁이 끝나고 어려웠던 시절에 박정희라는 뗏목이 유용했지만, 그것은 어제의 길이지 오늘의 길이 아니다. 박정희와 박근혜를 국가와 동일시하는 것은 강을 건넌 사람이 뗏목이 고맙다고 짊어지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시대, 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출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