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규 원불교 광주·전남교구 사무국장] 행복의 유일한 열쇠는 무엇인가?
옆집에 이사가 왔는지 짐을 정리하는 부산한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순간 정전이 되어 깜깜해지고 급히 초를 찾으러 서랍을 뒤지고 있는데 이사 온 옆집 아이가 문을 두드리더니 “아주머니 혹시 양초 있으세요?”라고 묻습니다. 순간 아주머니는 ‘이사 온 첫날부터 물건을 빌리러 오다니. 지금 빌려주면 사사건건 빌려달라고 할 게 틀림없어’라고 생각하고는 “아니 우리도 양초가 없단다 얘야”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자 아이는 방긋 웃으며 아주머니를 보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럴 줄 알았아요. 그래서 제가 양초 두 개를 가져왔어요. 이걸로 켜세요”하며 뒤춤에서 양초 두 개를 꺼내주고 갔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어린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많은 생각과 깨달음이 머릿속에서 스쳐갔을 것입니다.
요즘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웃끼리 왕래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이웃과 함께 화합하고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실제 행동으로 나오지 못해도 마음속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욕구가 있는 것일까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책임감이 있습니다. 가정이 행복하고 자녀가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좋은 이웃과의 관계가 선행되어야 하고, 가정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됩니다.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 역사서인 남사 여승진에 나오는 말입니다. 송계아라는 고위관리가 퇴직 후 살집을 살펴보다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이라는 사람의 집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을 천백만금에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묻자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백만금은 집값을 지불했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해 지불한 값이네.” 고로 이 말은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뜻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웃과 화목하고 화합하며 지내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안정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하기 위해 수백만년 인류가 내려오면서 이웃과 잘 지내야 한다라는 것이 하나의 덕목으로 내려온 셈이지요.
작년 12월 광주 개신교·불교·가톨릭·원불교·유교 종단대표모임인 광주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최순실사건이 한창일 무렵 평화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각 종단 합창단들이 함께 모여 종교인평화음악회를 진행했습니다. 신앙처가 다르고 의식이 다르지만 각 종단의 의식에 따라 신도들이 함께 마음 모으며 오직 평화를 위한 마음으로 진행하는 경건하고 축복이 넘치는 음악회였습니다.
몇십 년 전에는 다른 종교인들을 타종교인이라는 말로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이웃종교라고 서로 호칭을 합니다. 서로간의 신앙의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 평화를 바라는 종교인들의 마음은 하나이고 목적하는 바도 하나이기에 남남이 아닌 이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가 나의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면, 바꾸어 말해 내가 행복하면 그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은 겸손함과 화합으로 만들어지는 구조적인 형태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드러난 작금의 시대상황을 비유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이웃과 웃을 수 있었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가장 마음이 행복한 상태였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내 가정이 행복한 순간이 되어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는 있었겠지만 그 대강을 줄기잡아 말하자면 바로 ‘나눔’입니다. 나눔의 삶은 자신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열쇠입니다.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시국현안을 보며 안타까움과 참회의 마음이 교차합니다. 국가가 행복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가진 자들이 나눔의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행복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졌다하는 것은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경험·정보·기술·교육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나눔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요’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누구나에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있게 마련이고 한 사람 한 사람 나눔을 실천해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아날로그 자물쇠의 유일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양초를 건네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요즘 아파트에서 단독주택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웃끼리 왕래하며 살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라고 합니다. 간섭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이웃과 함께 화합하고 왕래하며 친밀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실제 행동으로 나오지 못해도 마음속에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천만매린’(千萬買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이는 중국 남북조시대의 남조 역사서인 남사 여승진에 나오는 말입니다. 송계아라는 고위관리가 퇴직 후 살집을 살펴보다 천백만금을 주고 여승진이라는 사람의 집 옆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백만금 밖에 안 되는 집을 천백만금에 샀다는 말에 여승진이 그 이유를 묻자 송계아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백만금은 집값을 지불했고, 천만금은 당신과 이웃이 되기 위해 지불한 값이네.” 고로 이 말은 천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뜻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이웃과 화목하고 화합하며 지내는 이유는 결국 자신이 행복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가정을 행복하게 안정시키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하기 위해 수백만년 인류가 내려오면서 이웃과 잘 지내야 한다라는 것이 하나의 덕목으로 내려온 셈이지요.
작년 12월 광주 개신교·불교·가톨릭·원불교·유교 종단대표모임인 광주종교인평화회의(KCRP)에서 최순실사건이 한창일 무렵 평화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각 종단 합창단들이 함께 모여 종교인평화음악회를 진행했습니다. 신앙처가 다르고 의식이 다르지만 각 종단의 의식에 따라 신도들이 함께 마음 모으며 오직 평화를 위한 마음으로 진행하는 경건하고 축복이 넘치는 음악회였습니다.
몇십 년 전에는 다른 종교인들을 타종교인이라는 말로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요즘은 이웃종교라고 서로 호칭을 합니다. 서로간의 신앙의 대상은 다르지만 결국 평화를 바라는 종교인들의 마음은 하나이고 목적하는 바도 하나이기에 남남이 아닌 이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이유가 나의 행복과 관련된 것이라면, 바꾸어 말해 내가 행복하면 그 행복을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게 됩니다. 행복은 겸손함과 화합으로 만들어지는 구조적인 형태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통해 드러난 작금의 시대상황을 비유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십시오.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이웃과 웃을 수 있었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가장 마음이 행복한 상태였고, 내가 어떤 마음이었을 때 내 가정이 행복한 순간이 되어있었는지를 말입니다.
여러 가지 형태는 있었겠지만 그 대강을 줄기잡아 말하자면 바로 ‘나눔’입니다. 나눔의 삶은 자신도 행복하고 이웃도 행복할 수 있는 하나밖에 없는 열쇠입니다. 시국이 어지럽습니다. 시국현안을 보며 안타까움과 참회의 마음이 교차합니다. 국가가 행복하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가진 자들이 나눔의 삶을 실천할 때 우리는 행복한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졌다하는 것은 단지 돈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경험·정보·기술·교육 등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나눔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요’라는 말은 틀린 말입니다. 누구나에게 나눌 수 있는 것은 있게 마련이고 한 사람 한 사람 나눔을 실천해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아날로그 자물쇠의 유일한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양초를 건네준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