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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반 고흐와 이중섭
2016년 10월 12일(수) 00:00
프랑스 파리의 북쪽에 위치한 오베르 쉬르 우아즈. 우아즈 강가의 오베르라는 뜻의 아담한 마을에 들어서자 ‘오베르주 라부’(Auberge Ravoux)라는 간판이 선명한 3층 건물이 눈에 띄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인상파 거장 반 고흐(1853∼1890)가 세상을 떠나기전 79일간 머물렀던 여관이다. 당시의 모습을 간직한 1층 카페와 고흐의 작품들을 모티브로 제작된 2층 기념품점, 하루 3프랑씩 세를 내며 거처했던 3층 다락방은 파리시가 문화재로 지정해 보존하고 있었다.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많은 관광객이 라부 여관을 찾는 이유는 꼭대기층에 자리한 다락방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삐걱거리는 나무계단을 오르면 볼 수 있는 7㎡ 규모의 허름한 방에는 초록색 나무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고흐는 이 의자에 캔버스를 걸쳐 놓고 그림을 그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웠다.

실제로 그는 이곳에서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100여 점의 작품과 편지 600통을 남겼다. 하지만 작품 판매는 든든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가 구입했던 그림 1점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궁핍했던 삶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오베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오베르 성당’과 ‘밀밭의 까마귀’가 불후의 명작으로 큰 울림을 주는 것도 사선을 넘나든 고통의 결실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의 초라한 방과 무덤을 둘러본 순간, 고(故) 이중섭 화백(1916∼1956)의 제주도 단칸방이 오버랩됐다. 1951년 6·25동란을 피해 제주도로 피신온 그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가족들을 일본에 떠나 보낸 후 이 곳에서 슬픔과 고독을 달래며 창작의 불꽃을 피웠다.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낸 수십 여 편의 편지에는 그의 예술이 그리움의 미학으로 가득함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택이나 사원같은데 천장이며 벽에다 온통 그림을 그리고 싶어. 먹을 것만 준다면 말야.” 얼마 전 막을 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 전시된 편지는 그의 불운했던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관람객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한 세기가 흘렀지만 예술가들의 삶은 여전히 각박하고 고달프다. 최근 광주전남연구원이 발표한 ‘광주 예술인 실태 조사 연구’ 에 따르면 지역 예술인 10명 중 6명은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며, 그 중 5명은 생계유지를 위해 예술 활동 이외의 다른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가운데 10명 중 3명(29.7%)의 연간 소득이 999만 원 이하인 것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예술가로서의 삶을 포기하는 경력단절경험률이 50.2%에 이른다는 점이다. 말 그대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붓을 꺾는 예술인들이 많다는 얘기다.

가난은 예술가의 숙명이라고도 하지만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모름지기 예술이 융성하고 시민들이 문화생활을 향유하려면 예술가들이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돼야 한다. 밥벌이를 찾아 작업실을 떠나는 예술가들이 늘어날수록 시민들의 ‘문화적 허기’도 커지기 때문이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