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룡 시인·문학들 발행인]먼 길을 나선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
지난 9월 1일부터 3일간 제주에 다녀왔다. 각 지역에서 출판과 문화잡지를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첫날 행사가 열린 제주 한라도서관 로비에는 이들이 펴낸 단행본과 잡지들이 전시되었다. 전주의 ‘모악’, ‘흐름’, 고창의 ‘기역/나무늘보’, 청주의 ‘직지’, 하동의 ‘상추쌈’, 진주의 ‘펄북스’, 부산의 ‘해성’ ‘산지니’, 대구의 ‘한티재’, 제주의 ‘각’ 등등. “하, 생각보다 넓고 깊구나!” 지역이 아니고서는 만들기 어려운 책들을 살피자니, 지역 출판사가 사라지면 지역의 콘텐츠도 사라진다는 말이 결코 빈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동안 너무 안이하게 출판을 해 온 것은 아닐까. 지역의 속사정을 파악하는 일에서부터 저자와 콘텐츠, 발간과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출판의 여러 국면을 지나치게 살얼음 걷듯 해 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과 함께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엄살과 너스레로 회피해 온 것은 아닌지 자괴감도 들었다.
어쨌거나 그날, 서울을 제외한 전국의 25개사 60여 명이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를 결성했다. 이 단체가 해 나갈 사업은 이날 발표한 ‘제주선언문’에 집약돼 있다. 내년부터 제주를 시작으로 해마다 ‘한국지역도서전’을 열자는 것, 순수 민간의 힘으로 ‘대한민국 지역출판대상’을 제정하자는 것, 그리고 지역문화잡지들의 문화콘텐츠를 전시하고 유통하는 ‘지역문화콘텐츠전’을 열자는 것이다. 각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출판·문화잡지인들이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여 지역의 출판과 문화를 적극 살려 보자는 취지였다.
‘한국지역도서전’이나 ‘대한민국 지역출판대상’ 등의 구상은 일본 돗토리현의 지역도서전 ‘북 인 돗토리’(bookin-tottori)의 영향이 컸다. 일본 출판물의 80%는 도쿄에서 발행된다. 나머지 20%가 도쿄 외의 전국 43개 현과 홋카이도, 교토부, 오사카부에서 발행된다. 지역 출판사의 여건이 좋을 리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일본에서 가장 작은 돗토리현에서 어떻게 해마다 지역도서전을 개최해 올해로 30회를 맞았을까.
‘지역도서전의 지속가능성 요인 연구’(김정명·최낙진 ‘한국출판학연구’ 제74호)에 따르면, 1972년 11월 돗토리현 이마이 서점 10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시민도서관을 만들고 지역출판물을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이마이 서점은 시민도서관을 만들자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돗토리현 출판문화상 협찬과 마을만들기 운동에 협력하게 된다. “가장 아래에 있는 돗토리현이 바뀌는 것이 일본 전체가 바뀌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3년에는 독서추진운동과 마을 살리기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돗토리현립 독서주간 연락협의회’를 발족한다. 해마다 열리는 일본의 독서주간(10월 27일∼11월 9일)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활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987년 돗토리현 서점조합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북인 돗토리 87 일본의 출판문화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북 인 돗토리’의 힘은 저자에서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돗토리현민의 ‘독자(讀者)운동’에서 나온다. 풀어쓰자면 민간이 주최가 된 폭넓은 책읽기 운동이 원동력인 셈이다. 여기에 마을도서관을 만들고 지역출판을 활성화하는 일들이 병행된다. 일본의 지역과 지역, 사람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지역을 복권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이들에게는 “정보는 중앙에서 지역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중앙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서로 흐른다는 확고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돗토리현 현립도서관의 책 구입비가 연간 1억 엔 이상으로 일본 내 상위 5위 안에 들고, 1인당 도서구입비가 전국 평균 21엔보다 훨씬 높은 171엔인 것은 이러한 운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돗토리현의 지역도서전이 한두 해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한국 돈으로 1000만 원을 넘지 않는 순수한 민간예산, 돗토리현민의 독서의식 진작과 도서관 활성화, 철저한 공정성, 일본 각 지역의 사회적 합의, 출판사·저자·언론의 공감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의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튿날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1층 커피숍에 앉아 있으려니, 4·3과 관련된 책들이 여러 권 눈에 띄었다. ‘4·3과 제주 역사’,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등등. 거개가 제주에 뿌리를 둔 지역출판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주섬주섬 펴내 온 책들이었다. 모든 것이 여실했다, 개체 없는 전체란 있을 수 없기에. 거기, 먼 길을 나선 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국지역도서전’이나 ‘대한민국 지역출판대상’ 등의 구상은 일본 돗토리현의 지역도서전 ‘북 인 돗토리’(bookin-tottori)의 영향이 컸다. 일본 출판물의 80%는 도쿄에서 발행된다. 나머지 20%가 도쿄 외의 전국 43개 현과 홋카이도, 교토부, 오사카부에서 발행된다. 지역 출판사의 여건이 좋을 리 없다. 사정이 이러한데, 일본에서 가장 작은 돗토리현에서 어떻게 해마다 지역도서전을 개최해 올해로 30회를 맞았을까.
‘지역도서전의 지속가능성 요인 연구’(김정명·최낙진 ‘한국출판학연구’ 제74호)에 따르면, 1972년 11월 돗토리현 이마이 서점 100주년을 기념하는 좌담회에서 시민도서관을 만들고 지역출판물을 키우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이마이 서점은 시민도서관을 만들자는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돗토리현 출판문화상 협찬과 마을만들기 운동에 협력하게 된다. “가장 아래에 있는 돗토리현이 바뀌는 것이 일본 전체가 바뀌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83년에는 독서추진운동과 마을 살리기 운동을 해온 사람들이 ‘돗토리현립 독서주간 연락협의회’를 발족한다. 해마다 열리는 일본의 독서주간(10월 27일∼11월 9일)이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활력소를 찾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1987년 돗토리현 서점조합 창립 40주년 기념사업으로 ‘북인 돗토리 87 일본의 출판문화전’을 개최하게 된 것이다.
‘북 인 돗토리’의 힘은 저자에서 독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돗토리현민의 ‘독자(讀者)운동’에서 나온다. 풀어쓰자면 민간이 주최가 된 폭넓은 책읽기 운동이 원동력인 셈이다. 여기에 마을도서관을 만들고 지역출판을 활성화하는 일들이 병행된다. 일본의 지역과 지역, 사람과 문화의 교류를 통해 지역을 복권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였다.
이들에게는 “정보는 중앙에서 지역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중앙으로, 지역에서 지역으로” 서로 흐른다는 확고한 인식이 깔려 있었다. 돗토리현 현립도서관의 책 구입비가 연간 1억 엔 이상으로 일본 내 상위 5위 안에 들고, 1인당 도서구입비가 전국 평균 21엔보다 훨씬 높은 171엔인 것은 이러한 운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돗토리현의 지역도서전이 한두 해에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는 한국 돈으로 1000만 원을 넘지 않는 순수한 민간예산, 돗토리현민의 독서의식 진작과 도서관 활성화, 철저한 공정성, 일본 각 지역의 사회적 합의, 출판사·저자·언론의 공감대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의 갈 길이 참으로 멀다는 생각이 든다. 이튿날 4·3평화공원을 둘러보고 1층 커피숍에 앉아 있으려니, 4·3과 관련된 책들이 여러 권 눈에 띄었다. ‘4·3과 제주 역사’,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 ‘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등등. 거개가 제주에 뿌리를 둔 지역출판사들이 오랜 세월 동안 주섬주섬 펴내 온 책들이었다. 모든 것이 여실했다, 개체 없는 전체란 있을 수 없기에. 거기, 먼 길을 나선 자들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