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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잃고 헤매는 민주평화교류원
윤 영 기
문화미디어부장
2016년 09월 07일(수) 00:00
지난 8월 서울에서 아는 사람이 찾아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안내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전시실을 둘러보며 전시 작품과 문화전당 전시·창작 공간의 용도를 물었다. 이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창조원, 정보원, 민주평화교류원(이하 민평) 등 전체 5개 원을 소개하자 그 규모와 비전을 듣고 그는 적이 놀라는 눈치였다.

그런데 그에게 미처 다 설명하지 못한 공간이 있었다. 실은 설명하지 못한 게 아니라 자세한 설명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성싶다. 광주민주화운동 단체들의 원형 복원 요구로 1년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는 민평에 관해서다.

이 공간은 옛 전남도청 본관·별관·회의실, 상무관, 그리고 경찰청 본관 및 민원실로 구성돼 있다. 각 공간에서는 광주항쟁을 예술적으로 승화한 ‘열흘간의 나비떼’를 전시할 예정이다. 하지만 콘텐츠 구축 작업이 사실상 완료 단계까지 와 있는데도 아직 공개되지 못하고 있다.

민평은 지난해 9월 문화전당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현재까지 문화전당 5개 원 가운데 유일하게 폐쇄돼 있는 공간이다. 문화전당 측이 굳이 부분 개방이라는 애매한 표현까지 써 가며 문을 연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평은 지난 5월 5·18 36주기에도, 6월 아시아-유럽 문화장관회의(ASEM)나 최근 남아시아 문화장관회의가 문화전당에서 열렸을 때도 손님을 맞지 못했다. 국제적으로 문화전당과 광주정신을 알릴 기회가 무산된 셈이다.

민평 문제가 꼬인 데는 옛 도청 본관에 대한 역사 인식이 부족했던 문화전당 측에 1차적 책임이 있다. 광주항쟁 유적이자 시민군 최후 거점을 단순하게 건축 문화재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문화전당 측은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도청 본관 등에 있던 진압군의 총탄 자국 위에 페인트를 덧칠했고 내부 상황실·방송실 등을 공학적으로 접근해 리모델링했다.

일견 5·18 기념재단과 3개 단체(유족회·구속자회·부상자회)가 광주항쟁 유적에 대한 원형 복원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나마 몇 남지 않은 5월 유적을 살리고 원형을 복원하는 것은 당위에 가깝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화재와 유적의 교과서적 보존 방법은 원형보존이며 나머지는 사족이다.

그럼에도 5월단체들의 당위론적 주장을 받아들여 복원 작업에 나서려면 또 다른 현실적 문제가 따른다. 문화전당 측 추산에 따르면 옛 전남도청 건물을 원형 복원하는 데는 45억 원 가량의 예산이 필요하다. 공사 기간만도 1년 6개월이다. 이미 민평 전시 콘텐츠 구축에 들어간 혈세 280여 억 원은 허공에 날리게 된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괜찮다. 현재까지도 문화전당 측은 지난 2013년 일단락된 옛 전남도청 별관 철거 논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월단체 등의 별관 점거 농성 등으로 빚어진 공사 지연에 따른 소송에서 업체에 패소해 100억 원을 혈세로 물어 주어야 할 처지다.

문화전당은 5·18의 숭고한 가치를 세계와 공유하고 그 유적과 공간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광주의 미래를 문화로 열어가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다. 이런 대의명분으로 착공 10년 만에 완공된 문화전당은 그러나 아직도 절름발이 신세다. 5개 원이 톱니처럼 맞물려 유기적으로 작동해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더욱 비관적인 것은 민평 현안이 언제 종결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모양새로만 보면 광주에서 문화전당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니, 문화전당이 제 기능을 못한다고 나무랄 수도 없는 딱한 입장이 됐다. 부끄럽게도 광주 지역 사회의 조정 기능 상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들까지 나오고 있다.

오는 11월 25일이면 문화전당 개관 1주년이다. 더는 민평을 방치하면 안 된다. 늦어도 한참 늦었지만 이제 5월 단체, 광주시, 정치권, 시민단체 등이 머리를 맞대고 숙의해 미래를 위한 대안을 마련할 시점이 됐다.

이쯤에서 생각을 좀 바꿔 보면 어떨까? 사고를 유연하게 하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함부르크의 작은 마을인 하르부르크에는 일명 ‘사라져 버린 기녑탑’이 있다고 한다. 조각가 요한 게르츠·샬레브 게르츠 씨가 1986년에 세운 ‘홀로코스트 기념탑’이다. 시민들은 나치의 잔혹상과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탑신에 글로 써 놓았다. 놀랍게도 이 탑은 매년 2m씩 땅으로 꺼져 들어가도록 설계돼 있어 결국 1993년에 자취를 감췄다.

탑을 설계한 작가들은 이런 말을 남겼다. “불의에 대항하는 것은 탑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광주 5월을 물리적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새기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