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박진현의 문화카페] 광주에 클래식 음악제가 있다면
2016년 08월 31일(수) 00:00
평소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은 대학총장 K씨는 올해 강원도 대관령에서 뜻깊은 여름 휴가를 보냈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긴 탓도 있지만, 오래전부터 꿈꿨던 평창대관령 국제음악제(7월12∼8월9일·대관령 음악제)를 관람해서다. 기회가 되면 꼭 가보고 싶었지만 워낙 접근성이 떨어져 계획만 세우다 끝나곤 했던 것이다.

공동 예술감독인 첼리스트 정명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자매와 부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씨가 기획한 대관령 음악제는 명성 그대로였다. ‘BBB자로…’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는 바로크, 고전,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를 의미하는 이들 ‘3B’의 작품을 축제의 메인 메뉴로 선보여 음악제의 위상을 과시했다. 특히 하일라이트인 ‘저명 연주가 시리즈’ 프로그램에는 정명화·경화 예술감독을 비롯해 손열음, 클라라 주미강, 권혁주 등 젊은 연주가들이 출연해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004년 ‘한국의 아스펜’(Aspen)을 모토로 창설된 대관령 음악제는 올해 사상 처음으로 30만 여명이 다녀가는 성과를 거뒀다. 물론 처음부터 화려했던 건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작은 문화이벤트로 출발한 음악제는 시민들의 관심과 지자체의 안정적 지원, 역량있는 예술감독의 기획력이 어우러져 불과 13년 만에 강원도를 클래식의 메카로 키워냈다.

‘웰 메이드’ 음악제는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로망이다.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와 브레겐츠 페스티벌, 이탈리아의 베로나 오페라 축제, 미국 콜로라도의 아스펜 축제 등 여름시즌에 맞춰 열리는 유명 페스티벌에는 전 세계에서 수십 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이처럼 경쟁력 있는 음악제는 시민들의 문화향유를 높이고 도시의 품격을 알리는 브랜드 효과가 있다.

첼리스트 정명화(72)예술감독은 최근 광주일보와의 특별인터뷰(본보 8월21일자)에서 “문화수도를 지향하는 광주에 클래식 음악제가 없다는 건 왠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서 “음악, 성악, 발레, 국악 등 지역의 풍부한 예술적 자산들을 문화콘텐츠로 잘 ‘엮어낸다면’ 세계적인 문화도시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물론 ‘남들이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따라하기식의 축제는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특히 음악제를 창설하는 목표도 분명치 않고 이를 구현할 역량도 갖추지 못한 다면 그저 돈만 축내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하지만 광주의 정체성과 문화 자산을 ‘잘 꿰어’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색깔 있는’ 클래식 음악제를 개최한다면 아시아의 문화허브로 가는 긴 여정에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광주는 시립교향악단과 전국 유일의 시립발레단을 보유한 만큼 클래식 음악제를 치러낼 잠재력이 크다. 가령 국악과 클래식의 만남을 컨셉으로 하거나 미디어 아트를 접목한 음악제는 광주만의 ‘컬러’를 보여줄 수 있다.

인터뷰 말미, 정 예술감독이 강조했던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접근성도 떨어지고 먹을 거리, 인프라가 빈약한 대관령에 비해 광주는 가진 게 너무 많아요. 클래식 음악제를 망설일 이유가 없어요.”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