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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옥숙 인문지행 대표]‘내가 가진 것’이 곧 ‘나’인가
2016년 08월 08일(월) 00:00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 연일 터져 나오는 소식들은 하나 같이 ‘인간의 염치’에 대한 믿음을 뿌리 채 무너뜨리는 것들뿐이다. 특히 법을 다루는 고위공직자와 행동 하나하나가 큰 파장을 일으키는 지도층의 후안무치한 행태들이 끝을 모른다. 이들이 저지른 일들은 무엇보다도 법과의 윤리가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존중받지 못하는 지를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행태들은 이미 개별적 한계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현상이 되었다. 더 소유하는 것, 소유하고 또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가 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소유나, 존재냐”하는 에리히 프롬의 물음에 대해서 이미 오래전에 무조건적으로 소유만을 선택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곧 ‘내가 가진 것’이라고 하는 확신 속에서 살아온 것은 아닐까. 더 많이 소유하는 것이 곧 더 잘 사는 것이며, 더 행복한 것이라는 생각을 신념으로 삼았던 것이 이러한 현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신념은 두 말할 것도 없이 현대사회의 불행한 미신이며, 쉽게 빠져나오기 어려운 미망임이 분명하다. 소유하는 것이 사람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왜곡할 뿐이기 때문이다.

사람 사는 세상은 윤리와 법에 따른 질서가 필요하고, 윤리는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을, 법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이 되는 도리를 배워야 비로소 사람이 된다는 것이며, 이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별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법’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끝없는 범죄행위가 참으로 가관이다. 그들은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을 오직 개인의 더 많은 소유를 위한 도구로 여겼을 뿐인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 정도로 천박하고 비루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만족할 것인가. 요즘 세상에 소명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임무에 대한 최소한의 자존심과 자부심만 있더라도, 법을 지키는 권위와 명예를 돈 세는 재미와 그리 쉽게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법과 윤리는 더 많은 소유를 위한 허울 좋은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소유에서 소유로 생을 소비하는 삶을 미련 없이 내던진 사람도 드물지만 분명히 있다. 필자는 현재 러시아의 대작가 레오 톨스토이의 자취를 찾아서 여행 중이다. 톨스토이는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일 뿐 아니라 인간의 ‘소유적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에 따른 행동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지주이자 백작인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금수저’ 보다 더 한 것을 입에 물고 세상에 나온 셈이다. 여기에 작가로서의 성공과 세계적 명성이 더해졌으니 그의 집안은 늘 당대의 유명 인사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톨스토이는 자신이 가진 것을 결코 권력화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의 가난한 사람들과 달리 넘치게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을 크나큰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더 많은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본래부터 가진 것을 수치로 여긴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일 지경이다. 톨스토이는 어느 모로 보나 당시 러시아의 지도적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평소 신념대로 전 재산과 모든 소유를 포기한 후에 말 그대로 빈손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대작가가 실제 살았던 저택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가진 것을 포기함으로써 소유가 아닌 존재의 삶을 선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역설한다.

어쩌면 평범한 사람들이 소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소유’를 위한 방식과 수단이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통해서 얻은 소유가 범죄인 것은 분명한 일이며, 이러한 소유방식이 정당한 것이거나 고의성이 없는 실수로 취급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사람존재의 가치는 없고 소유의 정도가 척도가 되는 세상에서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도 없다. 그 대신 오직 들통이 나서는 안 되는 일들만이 남는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그저 들키지만 않는 것이 ‘장땡’이라면, 이것이 곧 미래를 기대할 수 없는 ‘헬조선’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렇기에 소유에 관한 톨스토이의 생각이 더욱 더 특별한 울림을 갖는다. 그에 따르면, 누군가 더 많이 갖는 것은, 누군가는 그 만큼 갖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지나친 소유는 다른 사람의 몫을 빼앗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자신의 불필요하게 많은 소유를 떳떳하거나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었다. 한 사람이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필요한 소유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톨스토이의 이러한 정신은 존재적 삶의 가치가 결여된 맹목적인 소유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