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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아워 마스터’, 통하였느냐!
2016년 06월 01일(수) 00:00
전시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40m에 이르는 대형 스크린이 관람객을 맞았다. 꼭 영화관의 스크린을 마주하고 서있는 느낌이었다. 8개의 스크린이 하나로 이어진 벽면에는 목탄 애니메이션의 행렬이 경쾌한 음악과 함께 펼쳐졌다. 지난 29일 선보인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의 영상전시 ‘더욱 달콤하게, 춤을’(More Sweetly Play the Dance·윌리엄 켄트리지 작)이다.

하지만 내용은 제목처럼 달콤(?)하진 않았다. 죽음의 신이 인간들을 무덤으로 이끄는 ‘죽음의 무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빼앗긴 장례행렬이자 전쟁과 폭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피난행렬을 통해 인생의 덧없음을 그린 작품이다. 브라스 밴드의 연주와 독특한 목탄 영상에 몰입하다 보니 어느 순간 행렬 속 주인공이 된 듯했다.

남아공 출신의 켄트리지는 ‘더욱 달콤하게…’를 통해 안정된 삶에서 미지의 미래로 떠나는 현대인들의 사회적 고독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분명히 스크린의 인물들은 15세기 프레스코화에 나올 법한 예복을 입었지만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친근했다. 그 순간 1년 전 제주도의 본태박물관에서 관람한 ‘피안으로 가는 길의 동반자-꽃상여와 꼭두의 미학’전이 오버랩됐다. 저승으로 가는 길에도 슬픔 대신 꽃상여로 아름다움을 담아낸 우리의 전통 장례와 브라스 밴드의 흥겨운 음악과 행렬 인파의 춤으로 죽음을 애도한 ‘더욱 달콤하게…는 어딘지 모르게 닮아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9일 예술극장의 ‘아워 마스터’(Our master)’ 출품작인 켄트리지의 오페라 ‘율리시즈의 귀환’ 역시 전시 못지 않은 깊은 울림을 안겨줬다. 16세기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동명 오페라를 작가의 고향인 20세기 남아공의 요하네스 버그를 배경으로 각색한 작품은 그림, 영화, 연극, 오페라 등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켄트리지의 진가를 확인시켜 주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후반부를 바탕으로 죽음을 앞둔 율리시즈가 귀향, 행운, 사랑, 시간 등을 회상하는 줄거리다. 클래식 오페라의 전형적인 화려한 의상과 무대세트 대신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객석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다.

작가가 디자인한 목탄화 애니메이션 영상과 세계적인 인형극 단체 ‘핸드 스프링 퍼펫 컴퍼니’의 정교한 목각인형, 그리고 바로크 음악 그룹 리체르카레 콘소토의 연주는 1시간 40분 동안 관객 500여 명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아시아 동시대 예술의 허브’를 내건 문화전당 예술극장이 ‘율리시즈…’를 끝으로 15/16시즌을 마감했다. 지난해 9월 개관작 ‘차이밍량’을 시작으로 9개월 동안 예술극장의 무대에 오른 작품은 21편. 시즌 초기 실험적이고 난해한 콘셉트(concept)로 우려를 자아냈지만 ‘브런치 콘서트’와 시민아카데미 등 대중과의 소통을 내건 프로그램으로 서서히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율리시즈…’에서 보여준 관객들의 환호는 지역사회에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문화전당의 미래는 대중성과 예술성의 접점에 있다는 것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