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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미국 ‘금수저’들이 존경받는 이유
2016년 03월 30일(수) 00:00
미국 뉴욕의 맨하탄 5번가에는 독일어로 새로운 미술관이라는 뜻의 ‘노이에 갤러리’(Neue Gallery)가 있다. 건물 자체가 랜드마크인 주변의 구겐하임 미술관과 달리 너무 작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수년 전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노이에 갤러리를 눈앞에 두고 한참을 헤맸던 적이 있다.

하지만 매년 관광객들이 ‘눈에 잘 띄지도 않은’ 노이에 갤러리를 찾는 이유는 단 하나. 오스트리아 출신 구스타프 클림트의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1907년 작)을 보기 위해서다. 화려한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여인의 모습은 관람객을 화면 속으로 빨아들일 만큼 강렬하다.

지난해 여름 나는 오랜만에 ‘그녀’와 재회하는 기쁨을 누렸다. ‘아델레 블로흐…’에 얽힌 실화를 소재로 제작된 영화 ‘우먼 인 골드’(Woman in Gold) 에서였다. 이 작품이 바다 건너 맨해튼에 ‘입성’하게 되기까지의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충실하게 재현했다.

영화에서 내가 주목한 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깜짝 등장한 한 기업인이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글로벌 화장품 회사 ‘에스티로더’의 로널드 로더(72)회장이다. 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손을 거쳐 오스트리아 정부로 넘어간 외숙모의 초상화 ‘아델레 블로흐…’를 되찾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던 주인공 마리아 알트만 할머니에게 ‘솔깃한 제안’을 건넨다. 에스티 로더에서 일류 변호사 선임과 소송비용을 부담할 테니 자신에게 작품을 판매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 마리아 알트만은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8년간의 힘겨운 소송을 거쳐 지난 2006년 1월 16일 이 작품을 품에 안게 된다.

그로부터 5개월 후, ‘아델레 블로흐…’가 경매회사인 소더비 옥션에 ‘매물’로 나오자 국제 미술시장이 들썩거렸다. 수많은 컬렉터의 치열한 배팅 끝에 당시 회화 부분 최고거래가인 1억3500만달러(약 1540억 원)를 제시한 로널드 로더에게 낙찰됐다.

그는 세기의 명작을 전 세계인들이 언제든지 관람할 수 있도록 뉴욕의 오래된 건물을 노이에 갤러리로 리모델링하고 클림트와 로더 가문의 뿌리인 오스트리아 전문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새삼 남의 나라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그들의 ‘통 큰’ 기부가 부러워서만은 아니다. 돈이 많건 적건, 불우한 이웃과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때문이다. 만약 에스티 로더가의 기부가 없었다면 ‘아델레 블로흐 …’는 알트만가의 소장품으로만 남았을 것이기에.

최근 뉴욕에 거주하는 거부 51명이 뉴욕주지사와 주의회에 ‘상위 1%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 월트 디즈니의 손녀 아비게일 디즈니, 록펠러 가문의 5대손 스티브 C.록펠러 등 미국의 대표적인 ‘금수저’들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뉴욕주의 빈곤 아동율이 50%가 넘고, 8만 명 이상이 노숙자로 지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뉴욕주에서 돈을 벌었으니 세금을 더 내는 건 당연하다”고 했다. 언제쯤이면 우리도 이런 멋진 부자들을 만날 수 있을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