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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현의 문화카페] 1929년 vs 2015년
2015년 12월 23일(수) 00:00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 아침, 뉴욕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는 공포에 휩싸였다. 개장과 동시에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주가가 폭락하자 순식간에 카오스 상태에 빠진 것이다. 이날부터 11월 13일까지 약 20일 동안 300억 달러가 허공으로 사라졌다. 주가는 날마다 추락하고, 주식에 투기했던 기업과 은행은 줄줄이 무너졌다. 실업자가 넘쳐나고 경제가 망가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바로 그 유명한 ‘검은 목요일(Black Thursday)’이다. 20세기 초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대공황(Great Depression)은 이렇게 시작됐다.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그때, 뉴요커들의 귀를 의심케 하는 반가운 뉴스가 전해졌다. 맨하탄 한복판에 뉴욕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이하 모마)이 문을 연 것이다. 기업들의 투자의욕이 떨어지고 일반 가계의 소비심리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모마 개관은 센세이셔널 그 자체였다.

모마의 개관공신은 다름 아닌 3명의 사모님이었다.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가의 며느리인 애비 록펠러와 그녀의 친구인 메리 퀸 설리반, 릴리 블리스였다. 당시 뉴욕사회에서는 무모한 거사(?)를 감행한 이들에 대해 ‘대담한 여성들’, 또는 ‘철없는 사모님들’이라는 엇갈린 평이 나올 정도였다.

이들 3명이 미술관 건립에 힘을 모으게 된 계기는 ‘자존심’이었다. 종종 남편들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온 이들은 왠지 모를 허탈감이 가슴 한켠에 남았다.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전혀 ‘꿀릴게’ 없었지만 유럽의 미술관들을 둘러본 후 부러움과 콤플렉스(?) 등 미묘한 감정에 사로잡힌 것이다. 풍부한 재력을 바탕으로 수많은 유럽미술품을 사들이긴 했으나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지 못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을 방문한 미국의 재력가나 사회지도층들은 ‘문화’에서만큼은 기가 죽었다. 상류층을 중심으로 유럽에 필적할 만한 미술관을 건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애비의 친구들’ 역시 드러내놓고 말을 안 했을 뿐이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재빨리 간파한 작가 아서 데이비스는 애비 록펠러 여사를 찾아가 미술관 건립을 제안했고 마침내 대공항 속에서 역사적인 개관을 하게 됐다.

모마는 개관과 동시에 현대미술의 메카로 우뚝 섰다. 애비 여사의 화려한 컬렉션과 기업인들의 기부로 구입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등 세기의 걸작들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모마가 개관한 1929년은 문화강국의 저력을 보여준 해로 다른 나라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인 문화명소로 떠오른 요코하마의 ‘뱅크 아트 1929’가 그 예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을 틔운 모마의 탄생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사다난했던 2015년이 저물어 간다. 올해는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착공된 지 10년 만에 개관한 뜻깊은 해다. 먼 훗날 2015년이 문화융성의 해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느냐는 이제 광주의 역량에 달렸다. 아듀 2015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