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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행순 전남대 명예교수·카트만두대 객원교수] 네팔과 산둥수용소
2015년 12월 16일(수) 00:00
오늘의 네팔 현실이 2차 대전 중에 중국에 살고 있던 외국인 2000여명이 감금 생활을 한 산둥 수용소와 상당부분 유사하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아프다.

‘산둥수용소’(1966년)의 저자 랭던 길키(Langdon Gilkey)는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40년부터 북경의 연경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다가, 1943년 3월부터 2년반을 수용소 생활을 했다. 그의 체험과 사색을 담은 이 책은 ‘인간의 본성, 욕망,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실존적 보고서’라는 평가를 받는다.

산둥수용소는 담장 안에서만 살아야하는 감금생활, 외부와는 철저히 단절된 공간이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연상되는 잔혹한 전쟁포로수용소와는 다른 양상으로 운영되었다. 매일 두 번씩 점호는 있으나 신체적 속박은 없었고 자치가 허용되었으며 배급되는 식재료로 자체적으로 공동 취사를 하였다.

네팔은 중국과 인도를 국경으로 하는 내륙국가로서 자체 산업이 극히 미약한, 아시아 최빈국에 속한다. 중국으로 통하는 실크로드는 길이 협소하고 너무 멀고 험해서 거의 모든 물품들은 인도 수입에 의존한다.

그러나, 최근 4개월 이상 휘발유, 가스를 비롯한 생필품들의 유입이 봉쇄되고 있다. 네팔의 식자들은 이를 ‘경제전쟁’(economic war)이라고 부른다.

네팔은 2007년, 왕정에서 민주공화국으로 바뀐 후 새 정치 체재에 맞는 헌법을 통과시켜야 했다. 그러나 100개가 넘는 종족어를 가진 다종족 국가안에 4개의 주요 정당과 30개 이상의 군소정당 간에 합의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았다.

지난 봄, 대지진이 가져온 지각 변동 후 정치 지각 역시 대격변을 거쳐 주요 3당 합의하에 9월20일 신헌법이 통과되었다. 힌두국가에서 세속국가로의 전환, 여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이후 여성대통령 탄생도 신헌법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네팔은 아직도 진도 5 이상의 꽤 큰 여진으로 불안한 것처럼 공화국 헌법은 통과되었으나 정당간 각축 상태이며 직간접으로 인도와의 관계가 긴장상태이다. 국경봉쇄가 언제 풀릴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산둥수용소에서는 총칼을 든 일본군에 의해서 감금상태의 외국인들이 바깥 출입을 못하였지만 지금 네팔에서는 차량 연료 부족으로 자유로운 이동이 억제되고 있다.

산둥수용소에서 암거래가 성행했듯이 지금 네팔도 그렇다. 돈만 있으면 그런대로 필요한 물품들을 암시장에서 구할 수 있다. 그러나 ℓ당 1000원도 못하던 휘발유가 4∼5000원에 거래되고 주식인 쌀과 녹두, 식용유 등 물건 값이 계속 오르고 있어서 가난한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산둥수용소에서 부족한 배급으로 살아가는 수용자들은 춥고 배가 고팠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자국 귀환을 기다리는 기간에는 미국 적십자사가 보내주는 풍성한 구호물품들이 있었다.

2015년 4월과 5월에 네팔이 두 차례 대 지진을 겪을 때, 세계가 네팔에 관심을 기울이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지금 네팔은 지진 때보다 훨씬 더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외부의 도움과 언론의 관심이 절실하지만 세계가 무심한듯하여 야속한 느낌마저 든다.

수용소에서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생활이 장기화되면서 그 안에서 도덕과 질서, 평등과 평화, 협업, 기술을 통한 봉사 등 나름의 수용소문화가 형성되고 독특한 생존방식이 생겨났다. 마약 중독자가 갱생하고 비만에서 탈출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네팔에 취사용 프로판 가스가 떨어지자 자연스레 화덕을 사용하고 장작을 때서 밥을 한다. 차량운행을 자제하니 카트만두의 공기 오염도가 감소하는 좋은 면도 있다.

의식 있는 네팔인들은 이번 어려움을 겪으면서 인도로부터 자립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어떤 고난을 겪더라도 자국 헌법에 대한 외부 간섭에 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와 자존심은 네팔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7∼80년 만에 찾아온다는 대지진으로 간담을 서늘케 했던 2015년, 고향 방문길을 막고 문명의 시계 바늘을 반세기 전으로 돌려놓던 힘든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새해에는 이 나라에 안정과 평화가 풍요 속에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