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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희윤 소설가·광주여대 교수] 발견으로서의 역사
2015년 10월 26일(월) 00:00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뜨겁다.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며, 사실을 사실대로 가르치는 것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될까? 그러다가 ‘푸르타크 영웅전’이 생각났다. 선생님들의 권장도서 목록에 빠짐없이 들어 있던 책이었다. 특히 알렉산더 대왕의 일화 중 하나는 지금도 내 좌우명이 되어 있다.

“나는 승리를 훔치지 않는다!” 그의 말에 따라 초중고 대학 시절에, 나는 그 흔한 컨닝(복학해서 대강당에서 치른 교련 교과는 미필적 고의에 해당하므로 제외하고) 한번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를 먹음에 따라 내 앞에 나타난 영웅 알렉산더는 위대한 존재만은 아니었고, 사소한 결점이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그를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역사책에 관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가치적 차원이 절대 아닌- 토인비의 저서이다. 그의 ‘역사의 연구’의 서문을 4×6배판 대학 교양영어 교과서에서 만났다. 두 쪽을 넘어가는 긴 문장인데 신입생 모두를 해석의 늪 속으로 빠뜨렸다. 머리털 나고 그렇게 긴 문장은 만나 보지 못했다. -나중에 ‘한 문장도 채 못 된 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 벅찬, 한 문장은 결국 “역사는 반복한다”라는, 이른바 1형식 영어 문장이었다. 아무튼 중간고사 해석 문제이기에 투쟁하며 번역한 것이 내게는 ‘역사책 꼼꼼히 읽기’의 첫 번째였다.

다음으로 대학생 모두가 보고서를 써야 했던 카(E. H Carr)의 ‘역사는 무엇인가’였다. 이를 통해 나는 사실인 역사를 내 의식 속에 투영하여 나름대로의 역사 해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내 교육이 제시해 주었던 세계와 내가 현존한 세계의 결절한 차이나, 개인을 속이는 권력에 의해서 주어진 환상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었다.

그런 발견으로서의 역사의 또 하나 전환점은, ‘셔발턴’(subaltern)주의자들의 관점에서의 역사 연구였다. ‘오리엔탈리즘’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그들을 먼저 접했다면, 그 충격은 훨씬 컸을것이다. 아직도 그들과 조우했을 때의 충격은 내 무의식의 근저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다음엔, 나는 ‘미시사’(微時史)라는 흥미진진한 세계로, 소위 교수로서의 지적 상식을 유지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으로 역사를 읽는다. 역사는 왕조의 실록(實錄)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 발견으로서의 역사는 인간의 성숙 과정과 맞닿아 있다. 그러므로 역사는 사실을 적시함으로써 우리 모두에게 해석의 지평을 열어 놓아야 한다. 역사라는 ‘팩트’(facts)에 대한 해석은 각자의 몫이므로.

우리 역사 기록을 흔히 사초(史草)라고 부른다. 역사기록물에 왜 풀 ‘초’(草) 자를 썼을까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타당한 해석이 있지만, 나는 서개가 ‘설문계전’에서 ‘들에 제멋대로 자라난 풀처럼 결코 다듬지 않고 그대로 쓴 글’이라는 관점을 지지한다. 하나의 인격체인 학생들에게는, 역사를 ‘제멋대로 자라난 풀처럼 사실 그대로 제공’해야 한다. 교사는 자신의 자리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 주어야 하지만 이끌어서는 안 되며, 사실 말에게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일이다.

푸코가 ‘고고학적 역사론’을 통해 말한 대로 당대의 담론을 통하여 사회 전체를 지배하려는 보이지 않은 권력들의 의지가 작동되고 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아마 많은 지식인들과 학자들이 국정화에 반대한 것은 그러한 사실에 대한 암묵적 거부 반응일 것이다.

역사 공부는 인간이 현존재로서 자기를 아는 가장 훌륭한 공부이다. 그러므로 ‘들에서 스스로 자라난 풀처럼 사실 그대로 손으로 다듬지 않은 것’을 제공하고, 그것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역사의 바른 공부이다. 그 반대급부는 획일화일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