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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축제의 피로감
2015년 09월 02일(수) 00:00
평소 전시와 공연 관람을 즐기는 기자는 가보고 싶은 외국의 미술관이나 축제들이 많다. 그래서 책이나 TV 프로그램에서 흥미로운 곳을 발견하면 ‘나만의 위시리스트’(wish list)에 적어 놓는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안고. 몇 년 전 알게 된 세르비아의 ‘구차 트럼펫 페스티벌’도 그런 곳 중의 하나다.

구차(Gucha)는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자동차를 타고 남쪽으로 5시간 가량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마을이다. 말이 마을이지 주민이라고 해야 1000여 명도 채 안 되는 산골이다. 보여줄 것이라고는 산비탈에 듬성듬성 들어선 가옥들이 전부여서 평소엔 사람 구경하기조차 힘들다.

하지만, 매년 8월(둘쨋 주 수요일∼일요일)만 되면 관광객들로 시끌벅적해진다. ‘트럼펫 축제(Gucha Trumpet Music Festival)’때문이다. 54회째를 맞은 올해는 유럽, 미국, 아시아 등에서 약 80만 명의 관광객이 찾았다. 번듯한 공연장 하나 없지만 누구라도 길을 걷다 트럼펫을 불면 그 자리가 곧 콘서트홀이 된다. 축제기간 동안 작은 마을은 일류 트럼퍼 연주에서부터 장난감 트럼펫을 입에 문 꼬마들의 연주까지 트럼펫 소리로 넘쳐난다.

유럽의 오지인 구차가 관광지로 각광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유일의 ‘트럼펫 도시’이기 때문이다. 남동부 유럽의 발칸반도 중앙에 위치한 세르비아는 세르비아 혁명, 제1·2차 세계대전 등 ‘바람 잘 날 없는’ 역사를 거쳤다. 이때마다 세르비아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준 건 ‘드라가세보’라는 트럼펫이었다.

1961년 구차 마을의 화합의 장으로 출발한 트럼펫 축제는 이제 글로벌 페스티벌로 성장했다. 세르비아인들의 고단한 삶과 함께 해온 트럼펫의 역사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해마다 약 1100여 개의 크고 작은 축제가 열린다. 광주·전남도 예외가 아니다. 김치축제, 사직국제포크음악제, 아리랑 축제, 남도음식 큰잔치, 충장축제 등 수십 여 개나 된다. 하지만 ‘그저 그런 동네잔치’들이 많다 보니 가을이면 ‘축제의 홍수’로 피로감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적지 않다.

물론 차별화된 콘텐츠로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축제도 많다. 지난 31일 막을 내린 ‘2015 광주 월드뮤직 페스티벌’(이하 월페)이 그런 경우다. 올해로 6회째를 맞은 ‘월페’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제3세계의 민속음악을 클래식,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와 접목해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무대를 선사한다. ‘내년에도 참가하고 싶다’는 관객들이 80.2%(2014년 조사)에 달할 정도로 열성팬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다소 생소한 아랍권이나 아프리카의 노랫말 의미를 알려주는 주최측의 세심함까지 더해진다면 광주의 대표 브랜드로 손색이 없을 듯 하다.

트럼펫 페스티벌과 ‘월페’의 공통점은 단일 콘텐츠로 내실을 기했다는 것이다. 색깔 없는 축제는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닌 피로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축제만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것도 없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