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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동의 봄
2015년 04월 01일(수) 00:00
서양화가 한희원씨는 요즘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다. 짬이 나는 대로 광주 금남로의 작업실과 양림동(楊林洞)을 오가느라 바쁘다. 그가 부쩍 양림동을 자주 찾는 이유는 지난달 미술관으로 리모델링하기 위해 마련한 한옥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기와지붕만 살리고 나머지 공간은 완전히 뜯어 고치다 보니 직접 챙겨야 할 게 많기 때문이다.

한 작가가 양림동에 각별한 애정을 쏟는 건 유년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향’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세상을 떠난, 어린 시절 친구인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의 조소혜 작가가 그런 경우다. 드라마는 ‘떴지만’ 예술적 자양분이었던 작가의 고향은 알려지지 않은 게 안타까워 ‘양림동 알리미’로 나서게 됐다. 손이 많이 가는 한옥 미술관을 추켜 든 것도 작고 작가 배동신, 이강하, 시인 김현승 등 양림동 출신 예술인들을 기리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서다. 이제 막 공사에 들어간 한옥은 올 가을이면 양림동의 명소가 될 것 같다.

마침 한 작가의 한옥을 찾은 날은 ‘햇볕이 드는 동네’라는 이름처럼 봄볕이 따뜻했다. 양림동의 ‘구내식당’격인 한옥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이장우 가옥, 최승효 고택, 우일순 선교사 사택, 오웬 기념각, 어비슨 기념관 등 근대 유적들이 하나 둘씩 얼굴을 내밀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00년 전의 양림동으로 거슬러 온 듯했다.

이날 특히 기자의 시선을 끈 건 우일순 선교사 사택 아래에 자리한 두 개의 건물, ‘호랑가시나무 게스트 하우스’와 ‘호랑가시나무 창작소’(창작소)였다. 원래 원요한 선교사의 사택이었던 이곳을 문화기획자 정헌기(아트 주 대표)씨가 방문객들과 젊은 예술가들을 위해 각각 리모델링했다. 건물 주변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호랑가시나무에서 이름을 따온 건물들은 양림동의 풍광과 어우러져 색다른 감성을 불러 일으켰다. 행정의 지원 없이 양림동의 가치를 알리고 싶은 젊은 기획자의 땀으로 거둔 결실이어서인지 각별하게 느껴졌다. 올 안에 창작소 옆에 레지던시 작가들의 결과물을 선보일 ‘호랑가시나무 미술관’이 문을 열면 아담한 ‘아트 파크’(art park)가 탄생할 듯 하다.

이처럼 양림동에 가면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보물창고’들을 찾을 수 있다. 쓰레기장이었던 작은 골목을 하나하나 치워 작은 텃밭을 일군 김동균 씨의 ‘펭귄 텃밭’을 들여다 볼 수 있고 미디어 아티스트 정운학씨 부부의 예술카페 ‘파우제’, 시인 김현승을 모티브로 한, 세상에서 가장 작은 찻집 ‘다형다방’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

수 년 전 부터 광주시와 남구청은 근대문화역사마을 만들기사업이란 명목으로 양림동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양림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건 한희원, 정헌기, 정운학 같은 양림동 사람들의 열정이다. 비록 작고 더디지만 양림동의 ‘희망’이 아닐 수 없다. 햇볕 좋은 날, 양림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건 어떨까.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