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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지식으로 가는 길
김 창 균
광주시교육청 장학사
2015년 01월 07일(수) 00:00
‘밝다’는 뜻의 한자 명(明)은 해(日)와 달(月)이 합해진 글자다. 낮과 밤을 밝히는 대상을 결합해 만들어진 글자로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갑골문에서는 창문을 뜻하는 ‘경’과 ‘달’이 합쳐진 글자였다고 한다. 즉, 옛사람들이 생각한 ‘밝음’이란 어두운 밤에 창문을 비추는 환한 달빛의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논리적 사고는 경험의 범주를 벗어날 수는 없다. 갑골문자의 생성 과정을 보면 밝음이 어둠의 대조적 이미지로 존재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옛사람들의 삶에서 얻어진 문학적 감수성까지도 엿볼 수 있다. 단순히 빛을 발하는 대상으로서의 해와 달이라면 햇빛을 반사하는 데 불과한 달을 해와 동가(同價)로 보기가 어려울 것이며, 해와 달이 동 시간대에 존재하여 밝음을 배가(倍加)할 수 없음을 생각하면 해와 달이 합쳐져서 밝음을 뜻한다는 상식에 의문을 더할 만도 했을 것이다.

상리 공생의 대표적 사례로 통용되는 ‘악어와 악어새’ 관계는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악어 등 쪽에 붙어 있는 기생충을 잡아먹는 악어새가 간혹 악어 입 속을 들락거리는 일은 있지만, 악어 이빨 사이의 고기 찌꺼기를 청소해 주고 먹이로 삼는 사례가 실제로 관찰된 바는 없다고 한다.

이해관계가 전제되는 공생의 사례로 적절치 않음에도 지금껏 이어지고 있는 것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의 “악어가 물에서 나와 땅 위에 있을 때 입을 벌리고 있으면, 악어새가 입안의 거머리 같은 기생충을 먹어 청소한다. 이는 악어에게 유익한 일이기 때문에 악어는 악어새를 해치지 않는다.”는 기술에서 생긴 오해가 지금까지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문학적 수사와 과학적 사실의 경계를 무시한, 단순히 주입된 지식의 문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한다.

과학적 사고를 신봉하는 현대 사회에서 잘못된 오해가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는 두 부류의 지식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다고 느끼나 설명할 수 없는 지식과 내가 알고 있으며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는 지식이다. 똑같은 레시피로 요리하지만 어떤 이의 요리는 맛있는 반면 어떤 이의 요리는 뭔가 아쉬운 것과 같은 논리다. 유능한 요리사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재료와 분량의 문제가 아니라 재료의 맛과 특징, 양념의 상관관계 등을 잘 파악해서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강의하면 학생은 열심히 암기하는 주입식 교육은 레시피를 강요하는 것과 진배없다.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에 사고의 확장이 어렵고 학습 효과도 크지 않다. 이 점에서 작년 초에 EBS의 한 실험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대학생을 두 팀으로 나눠 3시간 후 시험 본다고 예고하고서, 한 팀은 칸막이된 곳에서 각자 조용히 공부하게 하고 다른 한 팀은 열린 공간에서 두명씩 팀을 이뤄 토론하며 공부하게 했다. 평가 결과 토론하며 학습한 팀이 2배 가까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토론이 주는 메타인지(Meta Cognition) 효과였다. 메타인지란 내가 아는 것과 안다고 착각하는 것, 내가 잘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는 것을 말한다. 혼자 공부하면 안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토론 과정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분명해지고 과제를 더 정확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 질문을 생성하지만, 질문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지적 호기심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를 위해서는 레시피에 대한 순응이 아니라 의문과 호기심을 부추기는 과정이 교수-학습 현장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삶의 경험에서 체득하는 밝음의 이미지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하는 밝음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인공 빛에 길들여진 우리 아이들이 사창(紗窓)에 깃든 달빛의 환함을 체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나아가 평생 낡은 이빨을 새 이빨로 교체하는 악어에게 이빨 청소부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는, 기존 질서나 지식에 대해서 의문을 갖고 질문할 수 있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