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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과 박봉우
2015년 01월 07일(수) 00:00
최근 예향 1월호 특집기획인 ’사람이 브랜드다’를 취재하기 위해 경남 통영에 다녀왔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소설가 박경리, 시인 청마 유치환· 김춘수, 서양화가 전혁림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인들을 배출한 예향이다. 그런데 통영을 찾던 날은 매서운 한파와 폭설이 내려 ‘사람 구경’을 하지 못할 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런 기자의 우려와는 달리 통영은 ‘딴세상’이었다. 도시재생의 성공모델인 동피랑 벽화마을을 기점으로 박경리 기념관∼청마 문학관∼김춘수 유품전시관∼통영국제음악당∼전혁림 미술관 등으로 이어지는 문화예술인투어에는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그중에서도 깊은 인상을 받은 곳은 청마문학관이었다. 지난 2000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통영시 정량동 언덕에 자리한 문학관은 청마 유치환(1908∼1967)의 육필 연서와 유품 등 3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비록 모습은 소박했지만 문학관 입구에 설치된 빨간우체통에 직접 쓴 손편지를 넣으며 즐거워 하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다.

문학관의 편지쓰기체험은 20여 년 간 매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5000여 통의 편지를 쓴 유치환의 삶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것. 그의 대표작 ‘행복’ 은 시인 이영도와 나눈 순결한 사랑을 담은 시로 청마는 옛 통영우체국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기록적인 한파에도 관광객들의 열기로 ‘행복한’ 청마 문학관을 보니 문득 광주의 작고 문인들이 스쳐 지나갔다. 유치환, 김춘수 못지 않는 다형 김현승(1913∼1975), 용아 박용철(1904∼1938), 박봉우(1934∼1990) 등 걸출한 시인들이 많지만 이들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어서다. 특히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시인은 박봉우다. 광주고와 전남대 출신인 그는 남북 분단의 비극을 고도의 시적 감각으로 형상화 한 ‘휴전선’(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의 주목을 받았지만 시대와의 ‘불화’로 평생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다. 생전 문우였던 천상병 시인이 널리 알려진 데 비해 박봉우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05년 그의 마지막 순간을 전해 들은 고 김규동 시인이 ‘가난한 살림에/소주 두 병 남기고/그는 갔다 저승으로/숨을 거둘 때/푹 꺼진 두 눈에 눈물이 고였더란다/몽롱한 의식을 뒤덮은 숱한 깃발/깃발에 싸여 박봉우는/이 땅에 오는 통일을 보았을 것이다.’(‘시인의 죽음’)라고 쓴 애도시가 그마나 위안을 준다.

2015년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 개관의 해가 밝았다. 하지만 전당만으로 광주가 하루아침에 확 달라지지는 않는다. 전당을 무엇으로 채우고, 이 자산을 어떤 콘텐츠와 연계할지 고민해야 한다. 한 도시의 정체성과 미래가치를 담보하는 자산은 바로 사람이다. 13만 명의 항구도시 통영을 문화도시로 변신시킨 것도 지역 예술인이지 않은가. 다만 사람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도시로, 한낱 놀림거리로 전락할 수도 있다. 더 이상 박봉우와 같은 지역 예술인들을 방치하지 말자. 결국은 사람이 브랜드다.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