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미술관 불모지 ‘여수의 꿈’
2014년 11월 05일(수) 00:00
지난 6월 취재차 들른 영국 국립미술관(내셔널 갤러리)은 말 그대로 명작의 보고(寶庫)였다. 세계 4대 미술관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전시장에는 학창 시절 미술 교과서에서 접했던 명화들로 가득했다. 차분하게 작품들을 감상할 수 없는 짧은 일정이 너무 아쉬웠다. 가능한 많은 그림을 눈에 담아 두기 위해서 수박 겉핧듯 전시장을 바삐 옮겨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대표작 ‘해바라기’(1888년 작)앞에선 한참 동안 머물렀다. 1888년 8월 프랑스 아를르에 거주할 당시 고흐가 그린 이 작품은 옅은 노란색 배경에 열 네 송이의 해바라기가 화병에 담겨 있다. 이글거리는 듯한 노란색과 터질 듯 촘촘한 박혀 있는 해바라기씨가 인상적이다. 고흐는 평생 동안 작품 1점을 판매한 불우한 작가였지만 강렬한 색감의 ‘해바라기’를 통해 예술에 대한 열정을 투영했다. ‘해바라기’가 유독 대중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다.

기자가 ‘해바라기’ 앞에서 오랫동안 발걸음을 멈춘 건 비단 그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난 1월 GS칼텍스예술마루에서 봤던 여수출신 고 손상기(1949 ∼1988)화백의 ‘시들지 않는 꽃-해바라기’ 연작(1981년 작)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의 사후 25주기를 기념해 열린 ‘고통과 절망을 끌어안은 예술혼’ 전에 출품된 작품은 화병 속 해바라기가 허리가 꺾인 채 시들어 가는 모습이다. 마치 세 살 때 앓은 척추만곡증으로 키가 140cm에 불과한 그의 자화상을 마주한 것처럼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었다. 그림과 달리 ‘시들지 않은 꽃…’이라는 제목이“세상은 몹시 험하지만 한번은 살아볼 만하다”던 그의 작가정신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비록 전시는 오래전 끝났지만 손상기 재조명 작업은 현재 진행중이다. 최근 여수시가 손상기 기념사업회와 함께 ‘여수지역 미술관 건립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손상기 미술관 건립을 위한 다각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사실 여수시는 인구 30만 명의 도시이지만 변변한 미술관 하나 없다. 여수보다 인구가 적은 목포나 함평, 보성, 무안, 화순, 강진 등이 미술관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의 문화향유를 높여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자연사박물관, 근대역사관, 어린이 바다과학관, 남농기념관 등 6∼7개의 박물관이 밀집한 ‘뮤지엄 마일’로 도시의 이미지를 높이고 있는 목포와 비교된다.

물론 지역의 정체성이나 콘텐츠가 빈약한 미술관 건립은 지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여수는 시민들의 문화향유욕구가 높고 고 손상기 화백, 향일암, 오동도 등 차별화된 자연·문화자원이 풍부한 만큼 미술관이 들어서는 건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미술관은 문화로 도시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잠재력이 풍부하다. 특히 지역의 화두로 떠오른 여수엑스포의 일부 시설을 미술관으로 재활용하는 방안은 적극 검토해 볼 만하다.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여수의 꿈’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혜를 모으자.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