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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미술관의 교훈
2014년 10월 15일(수) 00:00
지난달 말 일본 도쿄의 번화가 롯폰기에 자리한 모리미술관을 찾았다. 지난 2003년 문을 연 모리미술관은 연간 3000만 명이 찾는 도쿄의 명물 롯폰기 힐스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54층 빌딩(모리타워)의 53층에 들어선 입지조건 때문에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미술관’으로도 불린다. 색다른 입지와 밤 10시까지 문을 여는 파격적인 발상으로 미술애호가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모기업인 부동산 재벌 모리그룹의 전폭적인 재정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연중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블록버스터 기획전들은 웬만한 사립미술관은 물론 공립미술관도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모리 미술관은 미술관으로서는 성공하기 힘든 구조적인 한계를 지녔다. 미술관의 핵심인 컬렉션, 일명 대표작이 없어서다. 루브르 미술관의 ‘모나리자’, 뉴욕현대미술관의 ‘별이 빛나는 밤’처럼 관람객들을 불러 모으는 명작을 한점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컬렉션이 없다 보니 미술관 홍보와 관람객 유치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모리 미술관은 상설컬렉션이 없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지난 2005년부터 미술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수준높은 기획전으로만 전시장을 채우고 관람객들을 끌어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개관 2년 만에 깨달은 것이다. 이에 따라 모기업의 지원으로 매년 수십 여점의 작품을 구입한 결과, 현재 280여 점의 현대미술 컬렉션을 갖추게 됐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모리 미술관을 내려오는 내내,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복합전시관이다. 문화전당내 문화창조원의 핵심시설인 이곳은 높이가 16m이고 기둥이 없어 대형작품을 설치하는 데 최적의 공간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당초 미술관으로 설계되지 않은 탓에 상설컬렉션이 없는 데다 공간도 너무 커 스케일이 작은 전시로는 ‘임팩트’를 주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1년 365일 기획전이나 이벤트로 전시장을 채워야 하는 데 그러려면 매번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실제로 내년 9월 문화전당 개관전에만 이미 수백억 원이 들어갔다고 한다. 자칫 ‘돈먹는 하마’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그런데도 문광부는 문화전당의 운영주체를 문광부 소속이 아닌 특수법인에 맡기는 법안을 고집하고 있다. 물론 장기적으론 법인으로 가는 게 바람직할 수 있지만 정부의 재정지원이 담보되지 않는 법인화는 걸음마도 못 뗀 아이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불행하게도 광주엔 아낌없이 퍼주는 모리그룹과 같은 든든한 ‘빽’도 없다. 문광부는 모리미술관이 컬렉션에 눈을 돌린 이유를 깊이 새겨봐야 한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