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광주고려인마을 주민들은 독립유공자 후손
이 천 영
광주새날학교 교장·(사)고려인마을 이사장
2014년 09월 02일(화) 00:00
필자는 최근 수년간 국내 귀환 고려인동포들의 권리 찾기 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에만 국회 공청회 3차례, 서울광장 집회 1회 등을 열고 “고려인은 우리의 소중한 핏줄이자 독립유공자 후손이기에 정당한 대우를 하라”고 주장한바 있다. 하지만 대다수 지식인들은 ‘고려인 모두가 독립유공자의 후손은 아니며, 폭정과 수난을 피해 이주한 피난민에 불과하다’ 며 고려인 동포의 눈물어린 고난에 관심을 기울여 주지 않았다. 그로 인해 국내 귀환 고려인 동포들은 국제결혼이주여성이나 외국인근로자만도 못한 대우를 받으며 “조국마저 자신을 버렸다” 는 아픔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 체류자격 미비로 불안한 삶을 이어가는 고려인도 상당수다.

그러나 1910년 후반 10만명이 넘는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한반도와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투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특히 1918년 일본군이 러시아혁명에 간섭하며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7만 대군을 파병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은 러시아군과 손잡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선포했다.

일본군에 맞서 연해주 곳곳에서 고려인 무장독립군부대가 생겨났다. 한창걸 부대, 최호림 부대, 혈성단, 독립단 부대, 솔밭관 부대 등 최대 36개 부대 4000여 명의 고려인 독립군은 연해주 곳곳에서 5년 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 투쟁을 벌였다. 또 올가항 전투, 달레테첸스크 전투, 볼로차예프 전투 등에서는 러시아군과 연합해 일본군에 강력한 타격을 주었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독립전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연해주 10만 고려인 사회의 적극적인 군자금 지원과 각종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졸병 없는 독립전쟁이 과연 가능했겠는가? 고려인 동포들은 ‘나라를 되찾는데 목숨을 바치라’며 소중한 남편과 아들들을 내놓으며 격려했다. 그 후 대다수 가장과 아들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전쟁터에서 죽어 주검마저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의 장엄한 역사는 해방 이후 남북이 나눠지면서 남쪽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가려져 지워졌고 북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무장투쟁이 강조되면서 사라졌다.

요즘, 지난 몇 주에 걸쳐 KBS 1TV의 ‘KBS 파노라마’는 고려인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기획 3부작 ‘카레이스키 150’을 방영했다. 1편 ‘디아스포라-이산’에서는 고종의 통역관으로 근무하던 중 러일 전쟁 와중에 러시아로 탈출한 김인수의 후손이라는 러시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100년 가까이 간직한 김인수의 사진과 친필 편지를 공개했다. 이들에 따르면 김인수는 러시아군 대령으로 전선을 누비며 러시아 황제로부터 최고 훈장까지 받았다.

또 이날 방송에는 100년 전 러시아와 독일군의 폴란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 포로가 된 고려인들의 이야기도 처음 공개됐다. 2편 ‘레지스탕스-항전’은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의 역사를 중점적으로 조명했다. 3편 ‘오디세이-기나긴 여정’은 러시아공영방송 RTR 앵커인 고려인 5세 마리나 김의 시각에서 강제이주 이후 지금까지의 고려인 역사를 조명했다. 마리나 김이 한반도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유일한 한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고려인 2세 노병을 만나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고, 평양과 서울을 차례로 찾아 분단된 할아버지의 나라에 한없는 아픔을 느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잊은 고려인동포들의 국가에 대한 공헌은 이와 같이 역사의 현장에서 고스란히 살아남아 있다. 이래도 국내정착 고려인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정부는 고려인동포들의 헌신적인 노고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이에 민족적 고난을 몸으로 겪으며 살아오다 광주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정부지원도 없고, 관심도 없고,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것도 알아주지 않지만 황무지를 개척했던 조상들의 피를 이어왔기에 조상의 땅 광주에서 새롭게 시작 한다” 며 공동체를 형성한 후 자활을 꿈꾸고 있다. 또 오는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 당일에는 고려인마을 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조촐한 마을잔치를 월곡동 하남어린이공원에서 가질 예정이란다.

민주, 인권, 역사도시를 지향하는 광주시민은 우리지역에 정착한 고려인들이 광주에서나마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영예를 안고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한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