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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호준 광주과학기술원 4학년·물리전공] 과학과 영어 그리고 대학의 영어 강의
2014년 07월 01일(화) 00:00
대한민국에서 이공계 학도로 살아가면서 평생 발목을 잡는 것이 있으니 바로 ‘영어’다. 과거 단위가 국제단위계로 통일되었던 것처럼, 현재 과학계의 공용어는 영어로 굳어져 있다. 가령, 자연과학의 전 분야를 통틀어 영향력 있는 논문은 대부분(90% 이상) 영어로 작성되고 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국제)학회에서 사용되는 공식어 또한 영어이다. 다른 연구자와의 정보 및 의견 교환이 필수인 과학 연구의 특성상 언어 장벽으로 인해 최신 정보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연구자로서 크게 뒤처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현재 많은 대학에서 영어 교육을 강화해 국제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영어로만 진행하는 강의(영어강의)가 시행되고 있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GIST, KAIST, UNIST, DGIST, POSTECH)의 영어강의가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GIST의 경우 설립 초기부터 전공과목 100% 영어강의를 고수해 왔고, KAIST도 전공과목 100% 영어강의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좋은 취지의 영어강의는 몇 해 전부터 논란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영어강의로 인한 득보다 실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대학생활 4년 동안 모든 학기에 영어강의를 수강한 필자는 대학에 입학할 때만 해도 열렬한 영어강의 반대론자였다. 영어로 강의가 전달되면 그 이해도가 현저하게 낮아지고 한글로 강의할 때와 비교해 전달되는 내용의 질도 저하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영어강의를 통한 영어 능력 향상 효과가 미미하다고 판단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영어강의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이 바뀐 이유는 이공계 대학생으로 생활하면서 영어의 중요성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학사과정의 이공계 대학생에게 과학 지식은 공부해야 할 ‘대상’이다. 과학이 학습의 대상으로 여겨질 때, 영어로 된 원서(原書)를 읽고 영어로 강의를 듣는 것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장애물로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주어진 지식을 이용해 본격적으로 ‘연구 활동’에 집중하는 대학원생이 되면 입장이 달라진다. 대학생 때처럼 단순하게 개념을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지식을 가지고 남과 의사소통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를 수행했다고 해도 그것을 세상에 표현할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논문을 쓰거나 외국 학자와 의사소통을 할 때만 영어능력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대학원 시절 접하게 되는 전문 지식의 대부분은 영어로 쓰여 있다. 실제 연구에 필요한 지식과 정보는 우리가 대학생 때 공부했던 것처럼 문헌 속에 정형화 되어 있지 않다. 대부분의 경우 관련 논문이나 웹 검색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데, 이들의 절대 다수는 영어로 쓰여 있다. 영어가 전 세계 과학자들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매체인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쯤 되면 이공계 대학생에게 탁월한 영어 실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만하다.

문제는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현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영어강의에 반 강제적으로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대학 영어강의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학생들이 강의를 영어로 수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영어 실력을 늘리려는 내적 동기가 없는 수강생들은 원서로 공부하는 대신 번역본을 이용하거나 수업시간에 강의를 듣지 않고 혼자 공부를 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강의 내용을 이해하려는, 일종의 편법에 의지하게 된다. 그 결과 강의 이해도는 더 떨어지면서 영어 실력도 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나라 대학 영어강의의 현실이다. 일각에서는 다양한 근거를 대면서 영어강의의 개선을 주장하고 있다. 모두 나름대로 일리가 있는 말이다. 실제로 현행 영어강의에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개선안도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다. 외국으로 유학을 가더라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으면 발전이 없는 것이 언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