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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69년, 아직도 떼쓰는 사람들?
이 국 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
2014년 06월 17일(화) 00:00
양금덕(86) 할머니가 초등학교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일본에 건너간 것이 고작 14살때였다.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도 갈 수 있다”고 했지만, 막상 일본에 가 보니 전혀 딴 판이었다. 전쟁 막바지 군용 정찰기를 생산하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서 하루 10시간에 가까운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돈을 벌수 있다는 말도 거짓이었다. 임금 한 푼 못 받은 것은 물론, 감금이나 다름없는 생활에다 허기에도 시달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에 또래 동료 6명은 이역만리 타향에서 목숨까지 잃어야 했고 할머니도 큰 부상을 입고 말았다.

해방 뒤 고향에 돌아왔지만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다 온 것으로 오인됐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아버지마저 홧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렵게 가정을 꾸렸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일본에 다녀 온 것을 뒤늦게 안 남편이 10년간 바깥 생활을 따로 꾸렸기 때문이다. 남편이 밖에서 데려 온 아들 셋까지 떠안게 된 양 할머니는 가난과 병마에 신음하며 여섯 자식을 홀로 키워야 했다.

지난해 11월 1일 양금덕 할머니는 광주지방법원을 통해 미쓰비시중공업으로부터 배상 판결을 얻어냈다. 뒤늦게 용기를 내서 일본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벌인지 14년 8개월만의 승소이자,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장장 68년 만이었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잠시였고, 양 할머니는 아직도 힘겹게 법원 문턱을 넘어 다니고 있는 처지다. 미쓰비시가 판결에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건의 전례를 볼 때 광주고등법원 판결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사건이 곧바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전범기업들은 끝 모를 소송전으로 대법원까지 가자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이러다간 무덤까지 가서 소송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 지명자의 과거 발언과 칼럼 내용이 알려지면서 연일 국민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는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만든 데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고 하는가 하면 “조선 민족의 상징은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는 것이 우리 민족의 DNA”라며 민족성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평소 우리민족을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기 좋아하는 DNA를 가진’ 것으로 생각해 왔던 그의 눈에,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얼마나 불편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을까.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우리 민족의 민족성을 바꾸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생각해왔던 그에게는 어쩌면 일제 식민지배가 36년간이 아니라 한 오백년쯤 지속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아무리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하지만, 이런 정도의 인식이라면 국무총리가 아니라 국민 한 사람으로서의 자격조차 있는지 물어야 할 처지다.

문창극 총리 지명자는 한 칼럼에서 “과거 보상 문제는 아무리 인류 보편적 가치를 내세워도 협정을 무시하고 떼를 쓰는 꼴”이라고 했다고 한다. 혹시 일본총리가 말한 것이 아닌 가 귀를 의심할 정도다. 문 후보자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그렇지 않아도 발뺌할 구실만 찾고 있는 일본정부나 우익 인사들이 쌍수 들고 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일협정에 대해서는 이미 한국 사법부 판결이 내려진 사안이다. 개인 동의 없는 국가간 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될 수 없다는 것과 일제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보는 일본정부와 달리 대한민국 헌법 정신에 비춰 일제 식민지배는 불법적인 강제점령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문 후보자의 눈에는 아직도 양 할머니와 같은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돈 욕심에 이미 끝난 일을 두고 ‘떼쓰는 사람’으로만 보이는 것일까. 자신의 딸이나 어머니가 이런 일을 겪었어도 이렇게 말할 것인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69년, 아직까지 사죄 한마디 들어보지 못한 양 할머니에게는 더 없이 답답한 여름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