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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 현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
2013년 10월 16일(수) 00:00
지난해 가을. 모철민(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서울 예술의 전당 사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1988년 문화부 산하 비영리 재단으로 출범한 예술의 전당은 오페라 하우스, 음악당, IBK챔버홀, 한가람 미술관, 국립예술자료원 등 10여 개의 시설을 거느린 국내 제1의 복합문화센터다. 기자에게는 오는 2015년 개관하는 국립 아시아문화전당(이하 전당) 운영에 관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당초 오후 2시로 예정됐던 인터뷰는 오후 4시에 진행됐다. 예술의 전당을 후원하는 기업인들과 모 사장의 오찬이 늦어지면서 인터뷰시간이 바뀐 것이다. 처음엔 살짝 기분이 언짢았지만 저간의 사정을 듣고 나니 수긍이 갔다.

그도 그럴 것이 예술의 전당 수장에게 후원자들과의 만남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2000년 특별법인(정부 지원 30%, 자체 수익 70%)으로 전환된 이후 독자경영을 해야 하는 탓에 하루도 ‘편한 날’이 없어서다. 한 해 예산 630억 원(2011년)이 투입되는 ‘공룡조직’의 수지를 맞추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화려한 명성 뒤에 감춰진 예술의 전당의 ‘불편한 진실’을 엿볼 수 있었다.

지난 2006년 2월 미국 스미스소니언재단에서도 유사한 경험을 했다. 당초 은행가 출신의 로렌스 스몰 재단대표를 취재하기로 돼 있었지만 재단을 후원하는 이사회가 긴급 소집되는 바람에 국제협력부 디렉터가 대신 기자 일행을 맞이했다.

워싱턴 D.C에 자리한 스미스소니언은 19개의 박물관(미술관)과 연구소를 거느린 글로벌 랜드마크다. 한 해 방문객이 25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스미스소니언이 여느 복합문화기관들과 다른 점은 국립기관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미국 문화예술기관이 기업의 기부와 자체 수익으로 운영되는 것을 감안하면 극히 이례적이다.

여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1846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스미스슨은 유산 50만 불을 미국에 기증하면서 “전 세계인을 위한 문화전당을 건립하는 데 써달라”는 뜻을 남겼다. 문화예술기관을 지원한 전례가 없었던 미 연방의회는 고심 끝에 특별법령을 제정하고 다음과 같은 ‘솔루션’을 내놓았다. ‘스미스소니언 1년 운영비의 약 64%를 연방정부 예산으로, 12%를 정부기관 보조금으로 지원한다’는 조항을 (특별법에)명시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스미스소니언에게도 남모르는 ‘고충’이 있다.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프로젝트에 대해선 연방의회가 효율성 등을 이유로 종종 보조금을 깎기 때문이다. 70% 이상을 지원받는 국립기관이지만 살림살이가 버겁기는 여느 법인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문화예술기관의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든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 지역사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법률안’(특별법 개정안)이 정기국회에 제출됐다. 이 법안에는 “문화체육관광부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전당의 운영 및 사업의 전부 또는 일부를 아시아문화원 또는 관련 전문단체·법인에 위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전당을 국립기관이 아닌 특수법인에 위탁해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법인으로 가면 자율적인 운영을 꾀할 수 있는 등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개관도 하기 전에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법인화를 추진하는 건 너무 가혹하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에게 수백억 원이 들어가야 하는 전당의 금고를 ‘알아서’ 채워 넣으라는 얘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전당은 아시아의 문화발전소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여느 국내 문화예술기관의 위상과 크게 다르다. 미 의회가 스미스소니언의 공적인 가치에 주목한 것처럼 정부 역시 전당의 설립 취지에 걸맞은 ‘특별대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로선 정부의 재정 지원을 특별법 개정안에 명문화하는 게 전당을 살리는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 전당의 운명은 올 정기국회로 넘어갔다.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은 국립기관에 준하는 재정 지원을 받도록 ‘정치력’을 발휘해 지역민들의 근심을 덜어줘야 한다.

사실 언제부턴가 이들 의원들에 대한 지역사회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광주의 미래가 걸린 대역사(大役事)이지만 전당 콘텐츠와 법인화 등의 ‘빅이슈’에 대해선 팔장을 끼고 있어서다. 지역의원들에게 이번 국회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올 가을 ‘그대들의’ 숨겨진 능력을 보여주길 바란다.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