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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에서 온 편지 30] 네팔 서부 여행
박행순
2012년 12월 04일(화) 00:00
네팔에 거주하는 700여명의 교민중 약 90%가 수도인 카트만두에 살고 있다. 카트만두에 사는 교민 몇이 4박5일간 서부지역에 자리 잡은 한인 선교사들을 방문하러 가는데 나도 합류하였다. 그 중 한 분은 네팔의 총 75 ‘질라’(군 단위 행정구역) 가운데 74 질라를 자전거, 오토바이, 버스로 여행한 특별한 분으로 우리 여행길에 안내 역할을 톡톡히 했다.

11월 5일. 오전 6시 반에 카트만두를 출발하여 점심때에 ‘나라얀가드’의 소망의 집(House of Hope)에 도착했다. 20년 전에 온 이해덕 선교사 부부와 자원봉사자들이 450명의 어린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지난 10여 년의 내전으로 생긴 고아들,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가르치고 미래의 소망을 키워주고 있었다.

11월 6일. 아침 일찍 석가 탄생지인 룸비니에 들렸다. 망고 나무와 보리수의 시골길이 이어지고 들풀이 우거진 사이로 호수는 아침 안개를 피우고 있었다. 불교 유적지라서 여러 나라들이 각국을 상징하는 절을 짓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하고 있는 ‘대성석가사’에 잠시 들렸다가 갈 길이 멀기에 중국, 스리랑카, 태국 절을 차로 한 바퀴 돌고 자리를 떴다.

일행은 다시 ‘수리켓’을 향해 정글과 산을 넘어서 10시간 넘게 달렸다. 소떼, 염소떼는 길을 따라 가지만 원숭이, 여우 등은 길을 가로 질러 이쪽 숲에서 저쪽으로 재빨리 이동한다. 호랑이가 나오기도 한다는데 인가는 드물고 도로변에 쓰레기도 없고 공기는 맑고 무척 상쾌하다.

이번 여행은 내게 네팔의 아름다움을 온 몸으로 느끼게 했다. 산길을 돌고 돌아 오후 7시경 최동욱 선교사 댁에 도착하였다. 이들 부부는 미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이 산간 오지로 한 달 전에 들어왔다. 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여러 부족들이 인접해 있는 수리켓에서 각 부족들의 전통 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이곳은 60년 전 네팔이 개방되자마자 다국적 기독교 선교사들이 처음 들어 온 곳으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나환자들을 돌보고 결핵 예방과 퇴치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11월 7일. 오늘은 ‘네팔간즈’(네팔 땅이라는 뜻)에 들렀다. 이처럼 네팔 영토임을 확실히 하는 지명은 인도를 의식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일본에게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분명히 하기위해 독도를 ‘한국섬’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11월 8일. ‘탄센’에 가는 길에 ‘부뚜왈’에 있는 코이카에서 지원한 Korea-Nepal 기술학교를 방문하였다. 네팔 청년들에게 전기, 자동차, 기계 등 전문 기술을 가르는 직업교육이 목표라고 한다. 탄센병원에서 지난 5년간 외과의로 일했던 김동욱 선교사는 임기를 마치고 한 달 전 한국으로 돌아갔다. 병원 입구에 새겨진 “We serve, Jesus heals!”라는 문구가 이곳이 선교병원임을 말해준다. 나는 자연스레 내가 일하는 파탄 의대의 병원을 생각했다. 과거 50여 년간 선교병원으로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의료선교사들이 네팔인들을 위해 일했지만 지금은 정부로 넘어갔고 십여 년 사이에 기독교의 흔적들은 거의 사라졌다.

오후 7시경에 ‘포카라’에 도착하였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안나푸르나 고봉들이 아주 가까이 보이는 유명한 관광지이다. 때로 한국인들이 단합에 약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다섯 가정이 ‘단일연합체’를 만들어 협력하고 있다. 한국어 학원을 세워서 네팔 사람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 근로자로 보내기도 하고 아직도 왕이 있는 인접한 무스탕 지역에 다니며 음악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네팔의 젊은이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11월 9일. 오늘은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카트만두로 돌아오는 도중 ‘꺼이날리’의 음성나환자 공동체를 방문하였다. 영화 ‘벤허’의 나환자 거처와 너무도 흡사한 곳을 지나서 마당에 들어서니 45년을 이 땅에서 살았다는 70대의 초라한 독일 여선교사가 우리를 맞아준다. 차를 마시고 떠날 시간, 사진을 찍고 작별 인사를 하는데 가슴이 찡해지면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이 벽안의 독신 여성은 어떻게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의 가장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수 있었을까. 그녀의 편안한 미소가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파탄의대 객원교수·전남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