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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90주년 광주YWCA의 다짐
김 신 희
2012년 11월 27일(화) 00:00
광주YWCA가 올해 창립 90주년을 맞아 올 한해 북한어린이 분유 보내기 운동을 위한 캠페인과 시민걷기대회, 기념음악회, 기념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광주YWCA는 설립 이래 어려운 고비마다 여인들의 용기와 사랑으로 평화, 정의로운 사회건설을 위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 왔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치심을 자기 삶에 실천함으로써 평화와 정의의 사회건설을 목적으로 하는 신앙에 의해 가능했었다고 본다.

1922년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 창설자(김필례, 김활란, 유각경) 중의 한 사람인 김필례는 아직 YWCA가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는 그들에게 일제의 압박 아래 있던 민족의 암흑기인 당시의 역사와 사회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아가야할지 방향을 제시하였다. 이것은 그 후 역사의 질고를 짊어지고 민족의 수난기를 함께하면서 구국 및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하는 밑거름 되었다.

광주YWCA가 창립되던 당시에는 여성단체의 활동이 계몽과 사회운동의 성격으로 차츰 자리를 굳혀가던 시기로서 여성들의 활동뿐 아니라 모든 단체들의 직접적인 독립운동은 탄압을 받게 되면서 일부는 해외로 옮겨가고 일부는 국내에서 사회 문화적 행동으로 대치시켜 강연회나 야간학교를 개설하게 된 것이다. 광주YWCA는 첫 사업으로 야학반을 열어 무지와 구습에 젖은 부녀자들을 깨우치는 일을 하였다.

조선총독부가 신사참배를 강요하면서 광주YWCA 역시 강압에 의해 간판을 내릴 수밖에 없었고, 해방의 감격과 함께 광주YWCA재건이 이루어졌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한 고아들이 늘어나, 1952년 불우아동복지사업으로 성빈(聖貧)여사를 설립하였다. 이어 성빈여사생들과 영세민들의 진학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사설학원인 호남여숙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 후 한글 야학반인 별빛학원과 윤락여성들의 직업훈련시설인 계명여사를 설립하였고, 농촌 봉사 프로그램을 위한 노력도 쉬지 않았다. 1966년 3월 25일 개소식을 한 가정법률 상담소는 무지와 가난으로 법적 침해를 받고도 이를 호소할 길이 없는 사람들에게 법적인 권익보호를 위해 설립되었다. 이어 Y신협, 소비자상담실 운영, 장운동복지관 운영 등 소외된 계층을 위한 사업들을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따라 전개해 왔다.

1980년 당시 5·18 민중항쟁 당시 주요 활동지였던 대의동 Y회관은 계엄군의 무차별 공격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었고 총탄으로 곳곳이 파손되어 더 이상의 보수가 어려워 현 유동 Y회관으로 옮기게 되었다.

90년대 들어와 바른 삶 실천운동과 아나바다 운동 등을 집중 전개하였으며, 맞벌이가족을 위한 어린이 시범탁아소(현 어린이집)를 시작하였고, 일하는 여성의 집(현 여성인력개발센터)을 운영하여 여성들의 경제적 능력과 삶의 질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이어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쉼터와 가정폭력상담소(현 가정상담센터)를 개소하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성매매에 노출된 청소년을 위한 위기청소년교육센터와 가정폭력피해자 보호시설(현 솔빛타운)운영, 성빈여사 그룹홈 운영, 청소년들의 올바른 성교육을 위한 청소년성문화센터를 개소하게 되었다. 2007년부터는 ‘생명의 바람 세상을 살리는 여성’이라는 주제로 현재까지 안전한 먹을거리 제공을 위한 사회적기업 생명살림터(친환경 유기농 매장)를 운영하고 있다.

90년전 애국애족하는 마음으로 여성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심었던 씨앗 하나가 90줄의 나이테를 가진 큰 나무로 자랐다. 광주YWCA의 90년 동안 현장에 있었던 많은 자원지도자와 실무지도자들의 열정과 희생, 땀과 눈물 어린 헌신과 봉사가 있었으며, 특히 90년 속에 고(故) 조아라 명예회장의 여성과 민주화운동 및 여성복지향상을 통한 사랑·정의·평화·봉사정신은 앞으로도 계승 선양해야 할 것이다.

창립 90주년을 맞은 광주YWCA는 이제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세상을 살리는 생명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하며 정의와 평화의 세상 건설을 위해 7000여 회원들과 함께 100년을 향한 힘찬 발걸음을 내딛고자한다.

〈광주YWCA 사무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