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임정 수립 92돌과 친일파 청산
2011년 04월 12일(화) 00:00
92년전 1919년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날이다. 4월 13일은 이를 선포한 날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3·1운동의 결과로 태어났다. 3·1독립선언서 첫 줄에 ‘조선이 독립국임’을 밝혔기에 그 독립 국가의 이름을 짓고 그것을 운영할 정부를 만들고 나선 일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또한 이들 민족 지도자들은 더욱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데 우리의 정부가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마침 이 즈음에 천여 명의 한국 혁명 지사가 머물고 있던 중국 상하이에서는 동제사와 신한청년당의 인사들이 ‘독립임시사무소’를 설치하는 등, 상하이에선 한국의 임시정부가 태어날 여건이 마련돼 있었다.

마침내 1919년 4월 10일 저녁, 각 지방 대표 29명이 상하이 프랑스 조계인 김신부로(金神父路, 현주소 瑞金2路)에 있는 한 집에 모였고, 거기서, 임시 국회 격인 ‘임시의정원’을 구성했다. 그리고 곧 이어 첫 번째 의정원 회의를 열어, 임시정부의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민주공화제’를 골간으로 한 ‘임시헌장 10개조’를 채택한 뒤에, 선거를 통해 국무원을 구성했다. 그때가 날이 바뀌어 4월 11일. 그리고 이런 사실은 4월 13일에 세상에 공포됐다.

임시정부역사를 되돌아보며 오늘의 우리 현실을 생각한다. 임시정부수립 후 92년, 광복이 된지도 61년이 지나도록 우리는 일제의 강점으로 빚어진 과거사의 때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반민특위해체 이후, 친일파들이 계속 과거의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과거사가 정리되기는커녕 왜곡되고 미화되어 왔다. 지난 정권에서 과거사 청산작업을 위해 노력을 했지만 마무리도 되기 전에 문을 닫았고,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이 나온지도 2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고 있다.

‘민주, 인권, 평화의 도시’, 항일독립운동의 발상지 ‘의향(義鄕) 광주’의 한 가운데에도 친일인사의 흉상이 버젓이 자리잡고 그의 세탁된 행적만 새겨진 채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2세 교육의 중심지인 ‘어린이대공원’의 한 가운데, 안중근의사의 동상 옆에 대표적인 친일인사 안용백의 흉상이 30년이 다 되도록 자리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안용백은 조선총독부 학무국 편수서기로 근무하면서 여러 친일단체에 가입하여 열성적으로 활동하고, ‘문교의 조선’(文敎の朝鮮), ‘조선’, ‘녹기’, ‘조선행정’, ‘내선일체’ 등의 친일 잡지에 ‘내선일체’와 각종 황국신민화 정책을 찬양하고 선전하는 글을 여러 차례 기고하고, 경남 의령군수와 하동군수를 지냈던 적극적 친일행위자이다. 1959년 자유당 부정선거 ‘닭죽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한 안용백이 제2대 전남도교육감을 지낸 것도 한심한 일이었지만, 그의 흉상이 초·중·고생들의 소풍장소이면서 가족나들이 장소이고, 2년에 한번씩 비엔날레가 열리는 어린이대공원에 버젓이 자리잡은 채 역사를 모독하고 있는 현실이 너무 부끄럽다. 선생님이나 부모들과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찾은 아이들이 안중근 의사와 3·1운동기념탑을 공부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바로 옆 안용백의 흉상 앞에서 거기에 새겨진 세탁되고 미화된 글만 보고 그를 기념할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1993년에 광주시의회에서 문제가 제기됐고, 2001년에는 지역언론에서도 적나라하게 문제를 파헤쳤으나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독도문제 등에서 우리를 ‘얕보는 일본’의 태도 이면에 이 같은 우리의 모습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친일파청산. 과거사정리.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한가.

〈김순홍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 지부장·광주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