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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이주노동자로 산다는 것
2010년 03월 09일(화) 00:00
광주시 광산구 하남공단 내 외국인 근로자문화센터가 운영하는 쉼터에 머물던 아프리카근로자 코비씨가 지난해 11월 근로자 대기소로 가는 도중 뇌출혈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고국에서 가족이 오기까지 한 달간 영안실에 보관됐다. 사체보관 비용과 장례비용이 거의 5백만 원에 달했고 날마다 늘어만 가는 비용을 걱정하다가 한 달여 만에 간신히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

외국인 노동자와 인근교회에서 십시일반 모금한 돈으로 장례를 치르고, 남은 금액 60여만 원을 유족에게 위로금으로 전달했다. 그는 태어난 지 5년 된 아들을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였고,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 아버지를 낯설어 하는 딸을 둔 아버지였다. 그는 불법체류자이기도 했다 뒤늦게 찾아온 그의 아내는 코비씨의 무덤에 엎드려 한없이 흐느꼈다. 왜 이들이 한국에 왔을까? 자신의 고향에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었다. 자국의 파탄 난 경제는 그들을 가족과 이별하게 만들었고,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는 낙인을 안고 살게 만들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해 고국으로 송금한 돈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어린 자식들이 공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깨진 꿈일지라도 그들은 한국행을 택하고 있다.

지난주 필자는 까만 피부색의 아프리카 노동자가 임금을 받아달라는 도움을 요청받았다. 이것저것 할 일을 뒤로하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그동안 여러 차례 전화로 임금을 줄 것을 요청했지만, 그의 사장은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는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고 했다. 초행길인지라 많은 시간이 걸려 겨우 찾아간 공장은 폐비닐을 재생하는 공장이었다. 어지럽게 바람에 날리는 폐비닐이 쌓인 공장에 인적은 없었고, 숙소에는 옷가지가 어지럽게 널려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만난 사람은 기품 있는 조선족 여성이었다. 사장님을 만나러왔다며 말을 붙이자 본인도 온 지 일주일 됐다며 들어오란다. 음료수를 건네며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중국에서 과학원 연구원으로 재직한 경력이 있는 나름대로 학식이 있는 여성이었다고, 그런데 한국에 들어와 겪은 서러움에 가슴이 쓰리다고 했다. 직업소개소를 통해 소개받은 회사는 하루 14시간 일하면 상당한 보수를 준다며 밤낮없이 일을 시켰단다. 하지만, 6개월간 임금을 주지 않던 사장님이 갑자기 사라졌단다. 그 후 노동청에 신고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왔다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필자를 바라봤다.

이주 노동자들은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다. 누군가의 부모이며 누군가의 소중한 아들, 딸일 뿐이다. 우리에게 불편하고 작은 존재인 그들도 그들의 가족에게는 작은 영웅이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절 외국으로 떠났던 과거 영웅처럼 그들도 자존심과 꿈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들에게 함부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함박웃음을 짓고 입국했던 그들이 돌아갈 땐 눈물을 흘린다고 한다. 그들이 입국할 때와 마찬가지로 출국할 때도 함박웃음을 짓고 떠나게 할 수는 없을까.

/이천영 (사)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 소장·광주새날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