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옛 전남도청에 대한 불편한 진실
2009년 10월 20일(화) 00:00
80년대 이후 5·18은 민주주의의 추진력이자 힘의 원천이었다. 살아남은 자의 도리와 역할, 양심과 의리, 짐이라는 말도 5·18을 기점으로 대중적인 사회적 용어가 되었다.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모든 이에게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과제를 남겨 두었다. 5·18은 그 자체로 역사의 정방향을 위한 채찍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5·18이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 듯하다. 이는 소위 옛 전남도청 철거와 보존의 대치점에서 극단을 보여 주었다. 각종 상황논리와 절차를 내세워 도청 철거의 정당성을 설파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각종 착시현상이 난무하여 판단을 흐리게 하였다. 5·18이 광주에서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판에 ‘전국화요. 세계화요’ 하는 구호가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단 말인가? 주객전도(主客顚倒)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리라.

5·18은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따라서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모습을 보고 5·18을 이제 버리자고 하는 주장은 어떤 정당성이나 설득력도 가질 수 없다. 박정희 유신독재가 이순신을 영웅화해서 나름 정권을 위해 이용해 먹었다고 해서 이순신의 역사적 가치와 유산을 버리자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이순신에 대한 역사적 가치와 유산을 시대적 요구에 맞게 살려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역사적 사실과 유산은 결코 사라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법이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를 지우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은 언제나 역사의 반동세력들뿐이라는 사실을 한번쯤은 되새겨 볼 일이다.

옛 도청 철거와 보존을 둘러싼 지난 1년 이상의 대립은 단순히 낡은 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철거하느냐, 보존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 5·18 정신을 계승할 것인지 아니면 돈과 무한 경쟁, 속도와 효율로 요약되는 흐름에 굴복할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항쟁의 최후 격전지이자 항쟁을 완성한 상징이 옛 도청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한 역사적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적 장소인 옛 도청 보존에 대한 가치와 철학에 대한 근본적인 사색과 토론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철거론자들은 시기상실과 지나간 절차, 공기지연과 추가예산 등을 이유로 철거의 합리화를 주장하였다. 요컨대 보존됐으면 좋았겠으나 현재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속도와 돈보다 귀중한 가치가 훨씬 많은 법이다. 인류가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가치는 결코 돈과 경쟁의 효율로 평가될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랑과 의리, 평등과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보존과 계승 등이 그러하다. 또 잘못된 일은 기회가 있을 때 빠르게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상식 아닌가. 지났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역사에 대한 무지의 소산이며 이런 말은 정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놓쳤을 때나 필요한 말이다. 혹여 이미 도청 건물이 철거된 후 다시 복원하자는 논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면 철거론자들의 주장도 나름 이유가 될 수도 있었겠다.

이제 일단락된 옛 전남도청 문제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바로 보는 양심과 용기가 필요한 때다. 모두가 이번 일을 광주 지역사회를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자고 한다. 그러나 전화위복도 뼈를 깎는 노력 없이 그냥 되지 않는 법이다.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듯 불편한 진실을 바로 보는 데로부터 시작하자.

/장원섭 옛 전남도청보전 시도민대책위 상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