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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GO 칼럼] 누가 피해자인가
2008년 06월 23일(월) 23:59
1990년대 이후 여성운동의 특징은 운동하는 개개인이 행복해야 여성운동도 성공할 수 있다며 자신이 행복한 방식의 운동을 제기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이들은 삶의 문제와 여성문제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성범죄를 비롯한 여러 유형의 남성의 폭력을 공적인 이슈로 만들어 내게 된다.
과거에는 성폭력이 가해남성의 참을 수 없는 성충동이나 ‘정상적’이 아닌 개인의 병리로 인해 발생했다고 보거나 피해자와 가해자 간 성관계의 문제로 간주되는 등 국가가 간섭하기 어려운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문제 삼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은 성희롱, 성추행 등을 한번쯤 당해보지 않은 여성이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의 심각성이 드러나게 되었다. 급기야 성폭력 추방운동이 여성운동의 이슈로 자리 잡게 되고, 지난 1993년 일명 성폭력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성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 성관계의 문제가 아닌 권력에 의한 폭력의 문제이며 피해자의 입장에서 판단되어야 한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또한 성폭력은 전통적인 성역할과 성 관념을 가진 정상적인 사람들에 의해 발생하며 성폭력을 당한 여성은 가해남성을 자극하거나 유인하는 행동을 하며 은근히 즐긴다는 그릇된 관념은 철저히 비판받게 되었다.
그러나 법 제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한계는 여전히 나타난다. 우선 여성이 경험하는 다양한 형태의 비 동의적인 성폭력 중에서 폭행, 협박을 수단으로 한 것만을 성폭력 범죄의 구성요건으로 보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성폭력이 피해자의 성적자기결정권 혹은 인격권의 침해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정조가 강조되는 현실에서 가해자보다는 ‘누가 피해자인가’가 더 궁금해지게 만들어 내는 사회적 태도에 관한 것이다.
이는 친고죄 조항과 더불어 피해자의 신고율을 떨어뜨리고 법적 서비스를 제때 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최근 우리 지역사회에 성폭력에 대한 논란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법을 만들고 모범을 보여야 할 ‘작은’ 입법기관에서 출발하고 있다.
마치 피해자가 선뜻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성특법의 한계를 이용하고 있는 듯 자신들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데 서두르지 않고 있다. 혹시 남들도 이런 경험이 있을 터인데 왜 나만? 왜 내가 희생이 되어야 하지? 또는 시간이 지나면 잠잠해 질것이라는 생각에서라면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왜냐하면 성폭력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관계’가 아니라 감추면 감출수록 빠져나가면 나갈수록 더욱 주도면밀하게 나타날 엄연한 ‘폭력’이기 때문이다. 여성운동이 ‘성폭력추방’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백희정〈광주여성민우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