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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의 구애, 광주의 무심
2008년 06월 01일(일) 23:59
요즘 시카고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이하 시카고 심포니)의 지휘자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리카르도 무티(66)를 영입했기 때문이다. 시카고 심포니는 뉴욕 필하모닉과도 바꾸지 않는다고 할 만큼 시카고 시민들의 자랑이다.
하지만, 지난 2006년 9월 악장 새뮤얼 매거드가 물러난 이후 후임자를 찾지 못해 1년여 동안 가슴앓이를 해왔다. 특히 그 누구보다도 ‘우리의 시카고 심포니’를 이끌어 줄 거장을 기다려온 시민들의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영입 제1순위로 떠오른 사람은 리카르도 무티였다. 19년간 이탈리아 최고 명문 오페라극장인 라 스칼라를 이끈 무티는 지난 2005년 노사분규로 사임한 뒤 무적(無籍)으로 지내왔다. 그는 세계 유수의 악단으로부터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음악 감독이든, 대통령이든 그 어떤 곳에도 가지 않겠다. 나는 ‘리베로’가 되고 싶을 뿐”이라며 고사해 왔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시카고 전체가 무티 영입에 팔 걷고 나섰다. 시카고 심포니의 행정 사무국뿐만 아니라 음악 팬들과 지역 언론까지 이 지휘자를 향해 ‘삼고초려’를 펼쳤다. 시카고 심포니 사무국은 수석 지휘자를 비롯해 어떤 직책이든 가능하다며 사실상의 ‘백지 위임’을 보냈다. 시카고 트리뷴 등 지역 언론은 “무티야말로 시카고 심포니의 완벽한 조합”이라며 낯 간지러운 찬사까지 보냈다. 지휘자 한 명을 영입하기 위해 도시 전체가 발벗고 나선, 유례 드문 일이 벌어진 것이다.
결국 고집과 강단 있기로 소문난 지휘자 무티가 마음을 돌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당초 나는 창공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지낼 생각이었다. 새들은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누리지만, 가끔 나무를 발견하고 내려앉고 싶을 때도 생겨난다. (시카고는 그런 나무다)”고 말했다.
최근 광주도 지난날 시카고가 겪었던 마음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시아 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장 자리는 조영택 전 위원장의 후임자를 찾지 못해 60여 일째 공석이고, 광주비엔날레 문화CEO도 수개월째 영입하지 못하고 있다. 조성위원장과 문화 CEO 후보로 이어령 전 문광부 장관,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김창일 아라리오갤러리 대표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으나 당사자들이 고사하고 있어서다. 여기에는 이들의 ‘몸값’을 무색하게 하는 낮은 대우가 큰 이유겠지만, 거물들의 마음을 적시는 러브콜의 부재 탓도 있지 않은지 되돌아 볼 일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는 그 입지가 불안하고 광주비엔날레 역시 ‘신정아 사건’으로 명성이 크게 실추돼 왔다. 이같은 위기로부터 ‘문화광주’를 구하려면 광주시와 시민들도 유능한 수장 영입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꽁꽁 얼어붙은 무티의 마음을 녹인 건 달콤한 ‘백지위임‘이 아니라 시카고의 끈질긴 구애였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