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엔 시인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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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엔 시인이 되자
2008년 04월 13일(일) 18:44
“식사 때 마다 시(詩)요, 가는 곳 마다 제자(題字·휘호 등 필적을 남기는 일)였다”
지난 2005년 4월, 양안(兩岸) 분단 이후 56년만에 대만 국민당 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 롄잔(連戰)의 부인 팡위(方瑀)여사는 방문기간 내내 남모를 속앓이를 톡톡히 했다. 매 끼니마다 오리고기가 나오듯이, 가는 곳마다 시를 주고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난감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니었다. 사실 팡위여사는 중국 방문 전 고시(古詩)에 정통한 교사를 초빙해 특별과외까지 받았다. “대륙 사람들은 시를 즐겨 읊기 때문에 그에 박자를 못 맞추면 교양이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는 충고가 있어서 였다. 하지만 매번 자리를 옮길 때마다 시를 낭송하는 일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팡위여사는 식사자리건, 다과모임이건 장소를 불문한 중국 정치인들의 ‘문학적 감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중국 정치판에서 시 낭송은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낡은 운동화를 신어 ‘평민총리’라는 닉네임이 붙은 원자바오(溫家寶)는 ‘시인총리’라는 꼬리표가 하나 더 붙었다. 매년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 폐막일에 개최하는 내외신 기자회견은 그의 시낭송 무대(?)이기도 하다.
지난달 열린 기자회견에서 그는 예의 시인총리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잠들기 전 무슨 책을 읽고 어떤 문제로 종종 잠 못이루는가”라는 영국 기자의 질문에 대해 “긴 한숨 쉬며 남몰래 우는건/고생하는 민생이 애처로워”(長太息以掩涕兮 哀嘆百姓生活艱難)라는 굴원(屈原)의 한시로 국민에 대한 (총리로서의) 애틋한 마음을 에둘러 표현했다.
문학으로서 시는 종종 정치적 수사(修辭)로 변신하기도 한다. 지난해 9월 울산에서 열린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경선후보 합동유세장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손학규 후보가 ‘신정아 게이트’의 배후설로 이해찬 후보를 거론하면서 유세장은 두 후보의 설전으로 뜨거웠다.
이 때 정동영 후보가 ‘둘은 내해지만 둘은 뉘 해 인고…’라는 신라 향가 ‘처용가’를 읊어대기 시작했다. 이어 그는 “이 후보가 여자 문제로 시달렸는데 마음 놓으시라. 요즘 같으면 치고받을 일이지만 처용은 여유와 관용의 노래를 불렀다”며 “(이곳 울산은)처용의 마음을 이해할 것”이라는 말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최근 광주 무등중 2학년 교사가 지각생들에게 체벌 대신 시를 외우게 해 화제다. 등교시간을 지키지 못한 학생들에게 매 대신 시 한편을 외우게 한 것이다. 종례뒤 지각생들은 시를 외웠는지 점검하며 지각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시 암송 효과’ 인지 매일 4∼5명이 지각했으나 요즘은 1∼2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일찍이 공자는 “시를 읽지 않은 사람은 마치 바람벽을 대하고 있는 것과 같다”고 했다. 올 봄에는 나만의 애송시 리스트를 만들어 삶의 여유를 느껴보면 어떨까?
/문화생활부장·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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